새 정부의 가상자산(암호화폐) 육성 방안이 가시화하면서 가상자산 시장 선점을 위한 금융투자 업계들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이 110대 국정과제에 포함되면서 증권 업계는 합법적인 가상자산 사업 시작이 조만간 가능하다고 보고 커스터디(수탁), 증권형 토큰(STO), 가상자산 기반 상품 출시까지 시장 선점을 위한 전방위 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8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지난 3일 새 정부가 디지털자산기본법 제정과 국내 가상자산 공개(ICO)를 허용하는 방침을 110대 국정과제에 담으면서 증권사들은 합법적인 가상자산 시장 진출 길이 조만간 열릴 것으로 내다보고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디지털자산기본법은 가상자산 산업 육성부터 소비자 보호 방안까지 모두 담을 예정으로 증권, 은행 등 기존 금융권의 시장 진출 길도 터줄 전망이다.
증권사들이 우선 눈독 들이는 건 커스터디 사업 진출이다. KB증권은 앞서 KB은행이 지분 투자한 법인·기관 투자자 대상 비트코인 커스터디 업체 한국디지털에셋(KODA)에 추가 지분 투자 의사를 밝혔다. 신한금융투자도 디지털자산 담당 부서를 통해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미래에셋그룹 움직임은 보다 구체적이다. 미래에셋그룹은 미래에셋컨설팅 산하에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할 신규 자회사를 설립할 계획이다. 신규 자회사는 연내 출범을 목표로 기관과 법인을 대상으로 비트코인과 이더리움, 대체불가능토큰(NFT) 등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증권사들이 커스터디를 우선 들여다보는 건 기존 노하우 활용이 가능해서다. 또 현행 법 체계 내에서도 빠른 시일 내 사업화가 가능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커스터디 업무는 자산보관업에 해당해 증권사들도 수행이 가능하다”며 “다만 커스터디 대상 자산에 가상자산이 포함되느냐에 대해서는 일부 불확실성이 있지만 디지털자산 기본법만 신속하게 통과된다면 해결 가능한 문제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커스터디는 암호화폐 지갑을 대신 보관하고 관리해주는 서비스다. 거래와 결제, 대여, 세금처리 과정에서 수수료가 부과되고 증권사의 주 수익원이 될 전망이다. 해외에서는 피델리티, US뱅크 등이 기관과 법인을 대상으로 가상자산 커스터디 사업을 펼치고 있다.
증권사들은 증권형 토큰(STO) 사업 진출도 준비 중이다. 삼성증권(016360)은 블록체인 기반 STO 사업 진출을 위한 해외·석박사급 공채를 진행했으나 원하는 인재가 없어 채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대신 외부 전문가를 통해 가상자산 업계 현황 등 자료를 받아 내부 스터디를 진행 중이다. 미래에셋그룹은 자회사 미래에셋컨설팅을 통해 STO 등 디지털자산 서비스 개발과 기획·운영·전략 분야 경력직 채용에 나섰다. SK증권은 지난해 부동산 조각투자 플랫폼 업체 ‘펀블’과 한국투자증권은 빌딩 조각 플랫폼인 ‘루센트블록’과 각각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이 외에 NH증권도 전략기획팀을 통해 커스터디, STO 등 가산자산 사업성을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STO는 고가 미술품, 자동차, 시계, 저작권 등 기존 증권화가 어려웠던 자산을 수천, 수만 개 토큰으로 발행하는 게 가능하다. 토큰을 보유하면 해당 자산의 지분을 보유하는 것과 같은 효력이 생긴다. 그간 STO는 실물 자산을 유동화하기 쉽다는 장점에도 증권사들은 정부의 가상자산 진출 규제에 막혀 섣불리 진출하지 못했던 부문이다. 그러나 새 정부가 STO와 관련해 ‘자본시장법’ 규제 체계에 따라 발행할 수 있도록 하면서 진출 길이 열렸다. 증권사들은 법적으로 가상자산 사업 진출이 전격적으로 허용되면 비트코인, 이더리움 상장지수펀드(ETF) 등 금융상품 설계 및 판매, 거래소 운영 등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다만 증권사들의 가상자산 진출 길을 터줄 디지털자산기본법 시행까지 다소 시간이 소요될 전망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디지털자산기본법의 속도감 있는 추진을 위해 의원입법을 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도 “이달 말 국회 정무위 위원 교체가 예정된 데다 새 금융위원장 취임 등 일정을 보면 빠른 시일 내 입법이 추진되기는 어려워 보인다”고 설명했다. 해외 규제 동향이 이제 막 새롭게 발표되는 만큼 이를 반영하다 보면 입법 작업이 예상보다 늦춰질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종갑·한동희·김성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