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기간 미국 경제에 고효율의 에너지를 공급했던 기술주의 부진이 일시적일지, 장기 침체의 신호일지를 두고 투자자들의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광고부터 스트리밍 서비스까지 “2분기 더 힘들다”
기술주가 전자상거래, 디지털 광고, 스트리밍 서비스, 승차공유 서비스 등 분야를 막론하고 휘청이는 데 이어 2분기 전망까지 어둡다 보니 침체의 터널이 길어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여기에 이들 기업들이 고용을 동결하거나 인원 축소에 나선 것은 본격적인 침체의 시그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8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투자자들은 이번 침체가 장기 침체의 초기 단계가 될 것인지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세계은행에 따르면 2020년 메타·아마존·구글·애플·마이크로소프트(MS)는 총 1조1000억 달러(약 1400조원)의 매출을 거둬 네덜란드, 스위스, 터키, 사우디아라비아의 국내총생산(GDP)을 합한 규모를 넘어섰다. 전례 없는 빠른 성장과 세계 경제에 미치는 존재감이 커졌지만 이 역시 팬데믹 기간이 끝나자 빠르게 식었다는 위기감에서다. 기술주와 궤를 같이 하는 암호화폐 대장주인 비트코인 가격은 이날 3만4600달러(4409만원)을 기록하면서 3만5000달러선까지 붕괴했다.
인베스코의 케빈 홀트 선임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시장이 대혼란을 겪고 있다”며 “팬데믹 기간 저금리 시대에 기술주들이 비현실적으로 과대 평가된 것인지 투자자들이 판단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전했다. 인베스코는 1조6000억 달러(약 2032조원) 규모의 펀드를 관리하고 있다. 포트폴리오의 상당수는 기술주로 구성돼 있다.
“양쪽에서 쥐어 짜이는 기업들”
투자자들이 밝은 전망을 찾으려는 근거는 테크 기업들이 어려운 시기를 맞이했음에도 미국의 고용 시장이 아직 타격을 받지 않았다는 점에 있다. 미 노동청에 따르면 지난 4월 새로 추가된 일자리는 42만8000개에 달한다. 12개월 연속 매달 40만 개 이상의 신규 일자리가 생겨난 것이다. 실업률도 3.6% 수준에 머물렀다. 또 팬데믹 기간 급속하게 성장한 클라우드 사업 부문은 여전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대표 전자상거래 기업 아마존이 2015년 이후 처음으로 순손실을 기록했지만 아마존의 클라우드 사업 부문인 아마존웹서비스(AWS)는 나홀로 상승세를 보였다. 매출이 전년 대비 36.5% 오른 184억4000만달러(약23조5000억원)를 기록해 시장 전망치(182억7000만달러)를 앞섰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클라우드 비즈니스는 성장세를 보였다.
하지만 인플레이션이 40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운전자와 창고 노동자들을 대규모로 고용해야 하는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부터 위험 신호를 보였다는 점에서 이제 시작 단계라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더해 식당과 상점들이 오프라인으로 문을 열면서 온라인 주문 수요가 크게 감소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설명이다. 비용은 늘어나지만 매출이 줄어들면서 아마존은 2001년 닷컴 버블 이후 최저 성장률에 머물렀다. 이에 아마존 측은 "인력과 물류 창고 수용 능력이 이전 수준에 도달한 만큼 비용 절감에 집중하겠다"고 설명했다. 넷플릭스는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유료 구독자가 감소하면서 하루 만에 주가가 35% 폭락하기도 했다. 지난 1분기 선방한 애플조차 공급망 차질로 인해 올 2분기 80억 달러 규모의 매출 타격이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재 확보전 극심…심지어 채용 포기도
모두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인재 확보 경쟁은 치열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을 두고 윌 프라이스 넥스트 프론티어 캐피털 창업자는 “인재 확보 전쟁은 여전히 극도로 치열한 상황”이라며 “성장 전망은 둔화되고 있는데 여전히 경쟁사는 직원을 뺏어가고 있고 인재를 머물게 하려면 매년 8~9% 가량 연봉을 인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으로서는 양쪽에서 쥐어짜이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메타의 경우 대규모 채용 계획을 발표했다가 7개월 만에 중간 매니저급부터 임원급 인력 채용을 당분간 중단한다는 결정까지 내렸다. 인력 쟁탈전이 심화되는 것보다 부정적인 시그널이라는 분석이다.
몇몇 투자자들은 당분간 반도체 설계 분야나 팬데믹 기간 수요가 급상승한 기술 분야 투자를 피하는 전략에 나섰다. 로버트 쉐인 블랭크 쉐인 자산 관리 회사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기술주나 스타트업보다 강한 대차대조표를 보유한 기업들에 집중하고 있다”며 “금리가 계속 상승세를 보인다면 기술주를 적극 매입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고 회의감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