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취임을 하루 앞둔 9일 15개 부처 차관 인선을 단행했다. 인사청문회를 둘러싼 여야 충돌로 내각 구성이 지연되자 취임 전 차관을 임명해 부처를 끌고 가겠다는 의지에서다.
윤 당선인 측은 인사청문보고서 재송부 요청을 해둔 장관 후보자 5명의 임명을 강행하는 카드도 고려하고 있다. 또 더불어민주당이 총리 인준에 협조하지 않으면 총리 권한대행으로 가면서 정부 출범을 방해하는 모습을 국민들에게 보여줄 방침이다.
이날 윤 당선인은 15개 부처의 20개 차관급 인선을 발표했다. 18개 부처 중 법무부·여성가족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를 제외한 모든 부처의 차관급 인선을 끝낸 셈이다. 내각 구성이 불가능해지자 ‘차관 내각’을 통해서라도 국정을 이끌어가겠다는 뜻을 확실히 한 것이다.
민주당은 인사청문회를 마친 장관 12명 중 기획재정부·국방부·환경부·고용노동부·과기정통부·농림축산식품부·해양수산부 등 7개 부처 후보자의 청문보고서를 채택했다. 당선인 대변인실은 “윤 당선인은 정부 운영에 어떤 공백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의지를 담아 이번 인선 내용을 발표했다”며 “취임 즉시 관련 내용에 서명하고 발령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낙마 대상으로 꼽은 행정안전부·문화체육관광부·보건복지부·국토교통부·법무부 등 5개 부처 가운데 법무부 외에는 모두 임명했다. 행안부 차관에 한창섭 행안부 정부혁신조직실장, 문체부 1차관에 전병극 전 문체부 문화예술정책실장, 복지부 1차관에 조규홍 전 기재부 재정관리관, 2차관에 이기일 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 국토부 1차관에 이원재 전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청장이 내정됐다.
윤 당선인 취임 뒤인 11~12일 청문회가 열리는 여가부·중소벤처기업부·통일부 중에도 여가부 외 2곳의 차관을 임명했다. 중기부 차관에는 조주현 중기부 소상공인정책실장, 통일부 차관에는 김기웅 전 대통령비서실 통일비서관이 임명됐다.
윤 당선인이 차관 인선을 서두른 것은 앞서 박근혜 정부 때 장관 지명이 늦은 상태에서 장관도 차관도 없이 정부가 출범해 혼란이 있었던 상황을 반면교사로 삼은 것으로 풀이된다. 박 전 대통령은 취임 16일 만에 첫 차관 인선를 발표했다. 윤 당선인 핵심 관계자는 “이례적으로 정권 출범 전 차관을 발표하게 됐다”며 “새로운 차관이 부서를 꽉 장악하고 갈 것”이라고 말했다.
윤 당선인이 나아가 민주당이 반대하는 주요 장관 후보자 임명을 이번 주 내 강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윤 당선인 측은 앞서 행안부·문체부·복지부·국토부·외교부 등 다섯 개 부처 장관 후보자에 대해 이날까지 청문보고서를 재송부해달라고 요청했다. 윤 당선인의 의중에 따라 언제든 임명할 수 있도록 세팅해둔 것이라는 설명이다.
다만 윤 당선인 측은 민주당의 반대를 묵살하고 강행하는 데는 신중한 분위기다. 강행하는 순간 협치는 무산되며 이와 관련한 언론 비판도 거세질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윤 당선인은 박진 외교부 장관 후보자 등 국정 운영에 필수적인 부처부터 차례로 임명할 것으로 예상된다. 핵심 관계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방한하는데 외교장관이 없다”며 “정부가 최소한의 모양은 갖춰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당선인 측은 또 민주당이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 동의안을 부결시키면 추가 후보자 지명 없이 총리 권한대행 체제로 갈 것이라는 입장이 확고하다. 이는 민주당이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 후보자에 대한 뚜렷한 결격사유를 찾지 못한 상태에서 인준에 반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라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밀어붙이는 등 역대 최고의 강경 모드로 평가받는 민주당이 강성 지지층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한 후보자 인준 부결을 강행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 경우 정권 초기 협치는 사실상 물 건너갈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의회에서 법제사법위원장을 움켜쥐고 법안 길목을 장악하고, 윤 당선인은 대국민 호소 전략과 법안 거부권 행사 등으로 맞불을 놓는 식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것이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은 “1987년 체제 이후로 가장 여야 격돌의 강도가 심한 상태”라며 “지방선거를 눈앞에 두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협치 정신을 발휘하려 해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