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래들에게 구타를 당한 우리 아이는 자신이 왜 맞아야 했는지 알지 못합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유럽 곳곳에서는 어린 학생들이 러시아어를 쓴다는 이유로 또래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속출하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9일(현지시간) 유럽의 학생들과 학부모의 인터뷰를 보도했다. 독일 서부 도시 아헨 근교에 사는 알렉스 에베르트(11) 군의 가족은 카자흐스탄 출신 이민자로, 모국어로 러시아어를 쓴다. 에베르트의 어머니는 NYT에 아들이 지난 3월 하굣길 버스 안에서 또래들로부터 배와 등을 얻어맞은 뒤 버스에서 내려야만 했다고 전했다. 또래들은 "네가 우크라이나 아이들을 죽이고 있어"라고 아들에게 윽박질렀다고 어머니는 주장했다.
독일 함부르크 외곽 도시 하르세펠트에 거주하는 러시아계 독일인 아나스타샤 마키손(13) 양도 자신의 출신 때문에 두려움을 겪고 있다고 토로했다. 마키손은 자신을 나치라고 부르거나 '푸틴과 함께 보드카를 마시라'는 문자메시지를 여러 통 받았다고 털어놨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수백명의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이 희생당하는 직접적 피해를 낳았지만, 한편으로는 유럽에서 러시아어를 쓴다는 이유로 차별과 괴롭힘을 당하는 어린이들을 양산하는 왜곡 현상까지 초래했다고 NYT는 지적했다.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아시아권 어린이가 '왕따' 피해를 겪고 이슬람 무장 세력의 테러가 터지면 아랍어를 쓰는 어린이들이 괴롭힘을 당했던 것처럼, 세계의 이목이 쏠린 사태로 인해 무고한 아이들이 고통을 겪는 일이 재발했다는 것이다.
피해 사례는 유럽 국가 곳곳에서 전해지고 있다.
러시아계 이탈리아인 엘리사 스파도(14) 양은 온라인 메신저 단체대화방에서 자신을 '푸틴의 딸'이라고 부르고, '너는 죽을 수 있어'라고 위협하는 채팅에 시달렸다고 했다. 스파도는 NYT와 인터뷰에서 "너무 부끄러웠다. 러시아 출신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호소했다.
덴마크 호른스에 사는 안나마리아 카라브스카 한센(14) 양도 학교에서 급우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는 “친구들이 복도에서 저를 보고 '이 스파이를 봐'라고 했어요. 제게 폭탄을 던질 수 있다고 하는 아이도 있고요. 일부 아이들은 그걸 재밌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했다.
유럽 내 교육기관이나 일부 당국은 이 같은 문제를 인식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리투아니아 교육부는 장관 명의로 낸 성명에서 "학급 친구의 출신이 어떻든 (러시아의) 침공 때문에 비난받아서는 안 된다"고 밝혔고, 이탈리아 북부 리구리아주 의회 기안마르코 메두세이 의장은 TV에 출연해 "아이들은 이 문제(전쟁)와 떨어뜨려 놓자"고 제안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