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 아닌 美 원해야 가능…통화스와프의 정치학 [조지원의 BOK리포트]

글로벌 위기 닥치면 여러 곳과 체결
달러 공급하는 美 연준이 주도권 쥐어
원화 가치 낮아 상설 통화스와프 가능성↓
상설 맺은 EU·日도 통화 가치 하락 중

서울 중구 명동 KEB 하나은행 본점에서 한 직원이 달러를 살펴보고 있다./성형주기자

중앙은행끼리 급할 때 돈을 주고받을 수 있는 ‘통화스와프’는 최고 수준의 금융협력으로 꼽힌다. 위기 상황을 대비해 평소 쌓아두는 외환보유액이 적금이라면 통화스와프는 마이너스 통장이다. 계약을 체결해 놓고 필요한 때 언제든지 쓸 수 있기 때문에 외환보유액과 달리 보유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런 만큼 국제통화기금(IMF)은 통화스와프가 다른 금융안전망 대비 속보나 비용 측면에서 장점이 크다고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캐나다와 사전 한도가 없는 상설 통화스와프를 포함해 중국(590억 달러), 스위스(106억 달러), 인도네시아(100억 달러), 호주(81억 달러), UAE(54억 달러), 말레이시아(47억 달러), 터키(20억 달러) 등과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 중이다.


하지만 지난해 말 종료된 한미 통화스와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최근 다시 나오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b·연준)가 긴축에 속도를 내면서 원·달러 환율이 1270원을 돌파하는 등 시장 불안이 나타나면서다. 21일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의제로 통화스와프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마저 제기된다.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 위기 상황에서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 직후 외환시장이 안정된 사례가 있다.


문제는 양국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야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신흥국은 위기 대응을 목적으로, 선진국은 협력 증진 또는 자국 통화의 국제화를 위해 통화스와프를 체결한다. 이게 맞지 않으면 원하는 국가와 받아주는 국가라는 역학관계가 분명해진다. 특히 기축통화인 달러를 찍어내는 미국은 통화스와프를 맺고 싶어 하는 국가가 많아 연준이 먼저 나서지 않으면 사실상 불가능한 구조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 /AFP연합뉴스

우리나라가 체결했던 두 번의 한미 통화스와프 모두 세계 경제 위기 상황에서 연준 주도로 성사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 달러 유동성이 크게 부족해지자 연준은 우리나라를 포함한 14개국 중앙은행과 통화스와프를 체결하고 달러 유동성을 공급했다. 당시엔 신흥국뿐 아니라 유럽과 일본까지 달러를 공급받았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초반에도 안전자산이 달러 수요가 급증하자 연준이 적극적으로 나서 우리나라를 포함한 9개국과 통화스와프를 맺었다. 한은 관계자는 “연준이 체결하는 통화스와프는 일방적으로 달러를 공급하게 되기 때문에 연준이 어쩔 수 없이 주도권을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상설 통화스와프는 더욱 어려운 문제다. 미 연준이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한 중앙은행은 영국, 일본, 캐나다, 유럽연합, 스위스 등 5개국뿐이다. 2013년 10월 이후 상호 간 통화스와프를 무제한·무기한으로 상설화해 운영 중이다. 이외 국가들은 위기 상황마다 한시적으로 체결해 조금씩 연장하다가 필요성이 사라지면 여지없이 중단한다. 이마저도 1개국만 하는 것이 아니라 10여곳과 동시에 맺는다.


한은은 한시적 통화스와프를 넘어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하려면 무엇보다 원화 가치 제고가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우리나라는 수출 규모 기준 세계 6위지만 국제결제에서 원화가 활용되는 비중은 20위권 밖이다. 세계 외환거래에서도 원화는 12위이고, 통화별 외환보유액 순위에서도 원화는 0.8%로 8위 수준에 그친다. 이창용 한은 총재도 인사청문회에서 “미국과 상설 스와프를 가진 나라들은 전 세계적인 금융 허브라고 하는 국가들”이라며 “우리나라 상시 스와프가 되기 어려운 상태에서 원한다고 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10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딜러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한미 정상회담에서 정치·외교적인 거래를 통해 상설 통화스와프가 체결될 가능성도 작다는 평가다.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할 만한 반대급부를 미국 측에 제시해야 할 뿐 아니라 연준도 자국 내 여론을 살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국내 여론 역시 통화스와프 체결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지난해 8월 한은이 터키 중앙은행과 20억 달러(2조 3000억 원·175억 리라) 규모의 통화스와프 계약을 체결하자 한은이 실익이 크지 않은 일을 했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다. 한은은 결국 “리라화 가치 폭락으로 1조 원 손실을 봤다는 보도는 사실이 아니다”라는 해명자료를 내기도 했다. 미 연준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염두에 두고 있는 다른 중앙은행이 많은 만큼 한국만 콕 짚어 체결하지 않을 것이란 분석도 제기된다.


상설 통화스와프가 체결되더라도 원화 가치 하락을 막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현재 연준과 상설 통화스와프를 맺고 있는 일본과 EU 역시 엔화와 유로화 가치 폭락을 겪고 있다. 달러화 강세 영향으로 엔·달러 환율은 지난달 28일 이후 줄곧 심리적 저항선인 130엔선을 웃돌고 있다. 2002년 이후 20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유로화 역시 유로당 1.05달러 수준에서 오르내리면서 2017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경제학자는 “지금 원화 약세 현상은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나 코로나19 상황과는 확연히 다른 상황인 만큼 상설 통화스와프가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라며 “상설 통화스와프를 체결 중인 엔화나 유로화 가치가 떨어진 것을 보면 원화 약세를 되돌릴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기 때문에 한미 통화스와프라는 안전판이 있으면 좋다”라면서도 “현재 한국 펀더멘탈이 나쁘지 않다고 보기 때문에 통화스와프를 연장하지 않았는데 이제 와 다시 체결하면 오히려 한국 상황이 좋지 않다는 신호로 읽힐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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