外人, 주식 석달새 13兆 팔아…'최후 보루' 채권마저 자금 유입량 1/7 토막

[심상찮은 外資 유출]
◆금융위기 때로 돌아간 환율
인플레·고환율 맞물려 최악 상황
무역 적자 등 펀더멘털도 약해져
보유 외환은 IMF 기준미달 수준
美 긴축·우크라戰 등 악재들 산적
금융 변동성 커 자금이탈 이어질듯

12일 오전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달러화를 정리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금융시장 분위기가 급변하고 있는 것은 외국인 자금 동향 때문이다. 인플레이션과 고환율이 맞물리는 최악의 상황이 다가오고 있다는 우려 속에 외국인 자금의 엑소더스가 올 3월부터 심해졌다. 특히 3~4월 두 달에만 증시와 채권에서 72억 달러가량의 외국인 자금이 이탈했다. 우려되는 대목은 과거 한미 금리 역전 시기마다 ‘마지막 보루’처럼 버팀목 역할을 했던 채권시장에서도 외국인 자금 유입 움직임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는 점이다. 이런 자금 동향은 무역수지 적자 행진 등에서 나타나듯 우리 경제의 펀더멘털이 점점 취약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당장 12일 원·달러 환율은 달러당 1289원까지 치솟고 코스피도 1.63% 빠졌다.
전문가들은 반도체 등 일부 주력 산업에만 지나치게 의존해온 우리 경제가 위기를 맞자 금융시장부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미국의 초긴축을 비롯해 중국의 도시 봉쇄, 장기화되고 있는 우크라이나 전쟁 등 대외 악재가 산적한 상황에서 이중 삼중의 위기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2년 3월 이후 국제 금융·외환시장 동향’에 따르면 4월 중 외국인 증권(주식+채권) 투자 자금은 37억 8000만 달러 순유출됐다. 미국의 금리 인상이 시작된 3월(-33억 9000만 달러)부터 두 달 만에 71억 7000만 달러가 빠져나간 것이다. 연간 기준으로 4월을 기점으로 5억 70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특히 주식 자금이 4월에만 42억 6000만 달러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인들은 미국이 금리를 올리기 전인 2월부터 시작해 석 달 만에 국내 주식을 100억 달러어치 넘게 내다 팔았다.


눈에 띄는 점은 채권 자금마저 3월 이후 유입량이 급감했다는 것이다. 4월 외국인 채권 자금은 민간 자금을 중심으로 4억 7000만 달러 유입됐지만 이는 2020년 12월(-1억 7000만 달러) 이후 1년 4개월 만에 가장 적다. 1월과 2월까지만 해도 매달 30억 달러 넘게 유입된 것과 비교하면 7분의 1토막 수준이다. 한은 관계자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으로 내외 금리 차가 축소된 영향도 있지만 일부 해외 중앙은행과 국부펀드 등 기관투자가가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채권 자금이 유출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달러 조달 사정도 나빠졌다. 원·달러 스와프레이트(3개월물)는 3월 0.23%에서 4월 -0.38%로 마이너스 전환됐다. 이달 10일 기준으로도 -0.31%를 기록해 두 달째 마이너스다. 스와프레이트 하락은 달러 조달 비용 상승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마이너스로 전환됐다는 것은 달러를 빌려 쓸 때 웃돈을 받았다가 반대로 웃돈을 줘야 할 만큼 달러가 귀해졌다는 의미다. 국내 자산운용사나 증권사 등이 해외투자를 이어가기 위해 달러를 계속 조달하면서 스와프레이트가 떨어지는 상황이다.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은 갈수록 커지는데 국제수지 적자 보전과 시장 안정에 써야 할 외환 보유액은 줄고 있다. 4월 말 기준 우리나라 외환 보유액은 4493억 달러로 전월 대비 85억 1000만 달러 감소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외환 보유액 적정성 평가(ARA)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20년(0.99)과 2021년(0.99) 2년 연속으로 기준에 미달했다. 우리나라는 수출 의존도와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은 만큼 실제 적정 수준을 IMF 기준보다 높게 잡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외환 보유액이 충분한 것처럼 보여도 막상 위기가 닥치면 빠르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외환 보유액은 IMF 기준 대비 108%였으나 사후 분석 결과 충분하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8년 아르헨티나도 IMF가 권고한 만큼 외환 보유액을 가지고 있었지만 통화가치 급락과 자금 이탈 등으로 결국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김남종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외환 보유액을 얼마나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 사전에 알기 어렵고 위기가 발생한 이후에나 사후 판단할 수 있다”며 “외환 보유액이 적정 수준을 크게 벗어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줄어들고 있는 점은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다시 속도가 붙고 있는 미국의 긴축 행보, 중국 경제 둔화 등으로 국제 금융시장 변동성이 앞으로 보다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이다. 우리 정책 당국으로서는 대외 악재라 손쓸 방도가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매년 200억~300억 달러의 해외 주식·채권을 순매수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속도 조절론’까지 제기하는 상황이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이사는 “우리나라는 대외 의존도가 높은 만큼 외환 보유액은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며 “앞으로 외국인 투자 자금이 빠져나갈 가능성이 큰 가운데 외환 보유액이 부족해 리스크에 노출되는 상황만은 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민간 연구기관 관계자는 “환율은 기본적으로 산업 등 국가 경제의 경쟁력을 보여주는 바로미터”라면서도 “달러 수요를 줄이기 위한 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하는 한편 중장기적으로는 해외로 나간 기업의 유턴을 유인할 만큼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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