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3년 전 일본 열도를 뒤흔든 ‘항공기 납치 사건’이 발생했다. 이른바 ‘전일본공수(ANA) 61편 납치 사건’으로 불리는 이 사건으로 인해 승객과 승무원 등 517명이 공중에서 무려 54분 동안 불안에 떨어야 했다. 심지어 항공기의 운항을 책임지던 기장이 납치범의 칼에 찔려 생을 마감했다. 일본에서 발생한 항공기 납치 사건 중 승무원이나 승객이 처음으로 숨지는 초유의 사태였다.
비행기를 납치한 범인은 비행기만을 사랑한 ‘은둔형 외톨이’ 만 28세 남성 니시자와 유지(西? 裕司)였다. 그는 왜 수많은 목숨을 해칠 수도 있는 비행기 납치를 했던 것일까.
니시자와 유지는 여느 또래 아이들과 달리 노는 것보다 공부를 좋아하던 학생이었다. 특히 ‘비행기’를 좋아해 항상 숙제를 마친 뒤엔 전차와 비행기에 관한 책을 읽었다. 장래희망은 당연히 ‘점보기 조종사’였다.
훌륭한 성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니시자와는 명문대인 국립 히토쓰바시대학에 입학했다. 대학에 가서도 그의 비행기 사랑은 여전했다. 시간이 날 때마다 집에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비행 시뮬레이션을 돌렸고 방학에는 하네다 공항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항 시설들을 연구했다.
대학을 졸업할 시기가 되자 니시자와는 다양한 항공사에 입사 원서를 냈다. 하지만 결과는 모두 낙방. 총명한 두뇌로 줄곧 우수한 성적을 거뒀지만 최종 면접만 보면 항상 떨어졌다. 거듭된 탈락은 니시자와를 좌절시켰다.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받지 못하자 엄청난 우울감에 휩싸여 약 2년 동안 일본 각지를 배회하며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그러다 어머니의 신고로 경찰 손에 이끌려 집으로 돌아왔지만 낮아진 자존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마치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처럼 하루 종일 방 안에 틀어박혀 컴퓨터 비행 시뮬레이션만 할 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느 때처럼 방 안에서 공항 터미널 도면을 연구하던 니시자와는 하네다 공항 터미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1층 도착장과 2층 출발장이 계단으로 연결돼 있었던 것. 칼 같은 흉기는 기내 반입이 안 되지만 화물칸에 적재하는 탁송화물로는 부칠 수 있었다. 따라서 만약 승객이 칼이 든 가방을 탁송화물로 부친 후 도착장에서 가방을 찾아 곧바로 2층 출발장으로 올라가면 보안검색을 받지 않고 비행기에 탑승할 수 있다.
하네다 공항의 전수보안검사 허점을 파악한 니시자와는 곧바로 공항으로 달려가 두 눈으로 문제점을 직접 확인했다. 역시 그의 예상대로였다. 이후 곧장 집으로 돌아와 전국의 공항 터미널을 확인해보니 다른 공항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니시자와는 국토교통성, 각 항공사, 공항 경찰서, 주요 신문사에 하네다 공항을 비롯한 국내 공항 터미널이 하이재킹에 노출돼있다는 내용의 경고성 메일을 보낸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니시자와는 다시 용기를 내 직접 공항 당국에 전화를 걸어 해당 위험성을 설명했지만 돌아오는 건 담당자의 형식적인 대답과 얼른 끊으려는 태도였다.
그 누구도 니시자와의 말을 들어주지 않자 그는 하이재킹을 몸소 보여주기로 결심한다.
니시자와는 좌석 수가 가장 많은 보잉 747 국내선 여객기를 납치하기로 계획했다. 보잉 747은 니시자와가 비행 시뮬레이션을 할 때마다 항상 연습하던 기종이었다.
항공권과 식칼을 준비한 니시자와는 7월 23일을 D-DAY로 정했다. 범행 당일 니시자와는 오사카공항으로 가서 키오스크를 이용해 일본항공(JAL)102편과 ANA061편 탑승 수속을 마쳤다. 그리고는 식칼이 든 가방을 위탁수하물로 부친 뒤 JAL 102편에 탑승했다.
한 시간 뒤, 하네다공항에 도착한 니시자와는 1층 도착장에서 가방을 찾아 계단을 통해 2층 출발장으로 뛰어 올라갔다. 물론 화장실에서 수하물 태그도 떼었다. 니시자와가 ANA 061편이 출발하는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탑승구에서는 이제 막 승객들의 탑승이 시작되고 있었다.
오전 11시 24분 하네다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에서 랜딩기어가 접혀 올라가는 소리가 들리자 니시자와는 본격적으로 행동을 개시했다. 주저 없이 칼을 꺼내 들고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승무원이 앉아있는 객실 뒤쪽으로 걸어갔다. 승무원의 목에 칼을 대고 조종실로 안내하라고 명령했다. 이 상황을 보고 있던 다른 승무원은 다급히 인터폰으로 기장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기장은 관제소에 하이재킹이 발생했음을 통보했다. 니시자와가 승무원을 칼로 위협하며 기장에게 조종실 문 개방을 요구했고 결국 그는 조종실에 발을 들여놓을 수 있었다.
기장석 뒤의 보조석에 앉아 한 손엔 칼을 들고 비행계기들을 유심히 살펴보던 니시자와. 기장은 그가 정치적 목적을 가진 일반적인 납치범이 아님을 파악했다. 그래서 기장은 그에게 조종실의 계기들을 하나씩 설명했고, 니시자와는 마치 학생처럼 기장의 말을 경청했다. 그러다 니시자와는 기장에게 요코스카 공항으로 가라고 지시했다. 니시자와의 계획은 요코스카 공항 상공에 다다르면 요코타 공군 기지까지 B747-400 비행기를 직접 조종해 가는 것이었다. 요코스카 공항부터 요코타 공군 기지까지의 항로는 니시자와가 평소 시뮬레이션하던 구간이었기에 직접 조종할 수 있을 것이라 자신했다.
니시자와의 말대로 기장이 요코스카 쪽으로 항로를 변경하자 니시자와는 부기장(코가 카즈유키·古賀 和幸)에게 조종실을 나가라고 명령한다. 부기장이 나가자 니시자와는 자신의 계획대로 우측 조종석에서 직접 조종을 시도한다.
하지만 그의 뜻대로 조종간은 움직이지 않았다. 보잉 비행기는 기장과 부기장의 조종간이 물리적으로 연결돼 있어 양쪽 조종간이 함께 움직이는데, 납치범이 못 미더운 기장이 자신의 조종간을 꽉 잡았기 때문이다.
기장이 조종간을 놓지 않자 니시자와는 기장에게도 조종실을 나가라고 명령한다. 기장은 자신이 없으면 비행기는 곧 추락할 것이라 답했다. 기장이 조종실을 떠날 생각이 없어 보이자 니시자와는 들고 있던 식칼로 기장을 마구 찔러 쓰러뜨린다.
완벽하게 조종실을 접수한 니시자와는 자동조종장치를 해제하고 직접 비행기를 조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시뮬레이션과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니시자와가 수동 조종을 시작하자 항공기는 순식간에 머리를 땅으로 처박으며 급격히 기울었다. 동시에 지상 충돌이 임박했음을 알리는 자동 경보 장치도 울리며 조종실 안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비행기의 추락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던 예비 기장(야마우치 준지·山? 純二)은 온몸을 던져 조종실 문을 열었다. 그 덕에 지상 300m의 상공에서 도쿄 외곽의 주택가로 추락하고 있던 비행기는 다행히 항로를 바꿔 충돌을 면했다. 그사이 부기장과 승무원들은 니시자와를 조종실 밖으로 끌어냈고 승객들은 일제히 달려들어 넥타이와 허리띠로 그를 좌석에 묶었다.
오후 12시 14분. 이륙 56분 만에 ANA 061편은 하네다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니시자와의 하이재킹(전일본공수 61편 납치 사건) 이후 일본 국토교통성은 뒤늦게 대책 회의를 열었다. 그리고는 하네다공항을 포함한 일본 내 모든 공항 터미널의 출발장과 도착장에 역류 방지 게이트를 설치하고 경비원을 배치했다. 니시자와가 이메일로 요구했던 하이재킹 방지 대책 그대로였다.
니시자와가 메일을 보냈을 때 한 명이라도 그의 말에 관심을 두고 귀를 기울였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니시자와는 현재 살해·항공기 납치 등의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