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4세 경영승계 포기…SK·현대차·LG, 이사회 주도 ESG 강화

[다시 기업을 뛰게 하자] ■달라지는 기업들
한화는 비인도적 무기 사업 매각
지속가능경영·상생 실현에 적극
"정부, 규제 대신 인센티브 지원을"

한국 사회에 반기업 정서가 자리 잡는 과정에는 일부 기업과 재계 인사가 저지른 잘못이 큰 영향을 미쳤다. 압축 성장 시기에 벌어진 정경 유착, 협력사의 기술을 탈취하거나 단가를 후려치는 대기업의 갑질, 총수 일가의 범법 행위 등이 반복되며 사회 전반의 반기업 정서를 심화했다는 점에는 재계와 학계 모두 이견이 없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잘못된 관행을 버리고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하는 기업이 늘어나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미 변화의 움직임은 곳곳에서 감지된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에 방점을 찍고 지속 가능한 경영 체제 확립을 시도하거나 협력사와 상생, 윤리 경영 실천으로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삼성은 그룹 전반의 윤리 경영을 위해 외부인으로 구성된 ‘준법감시위원회’를 만들었다. 2020년 2월 출범한 삼성 준법위에는 법조계·시민단체·학계 등으로 이뤄진 외부 인사 6인이 위원으로 합류해 경영진의 준법 의무 위반을 감시하고 있다. 특히 이재용 삼성 부회장은 준법위의 권고를 받아들여 대국민 사과와 4세 경영 승계 포기를 공개적으로 약속하기도 했다. 고(故) 이병철 선대 회장부터 이어진 3세 경영을 끝으로 전문 경영인에게 그룹 총수 역할을 넘기겠다는 선언이었다. 혈연에 의한 경영권 승계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많았던 만큼 이 부회장의 선언은 과감한 결단으로 평가받았다.




ESG 경영을 본격화하기 위해 이사회에 심의 장치를 만드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환경과 사회적 책임에 관한 논의를 회사 내 최고 의사결정기구에 맡겨 ESG 대응과 관리 역량, 실행력을 동시에 강화하려는 시도로 풀이된다. 삼성전자(005930)는 이사회 산하 거버넌스위원회를 지속가능경영위원회로 개편했다. 사외이사로 구성돼 독립성을 보장받은 지속가능경영위는 기후변화·순환경제·노동인권·다양성·공급망·윤리경영 등 ESG 관련 안건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역시 이사회에 지속가능경영위원회를 마련해 ESG 정책과 활동을 심의·의결하고 있고 SK(034730)도 ESG위원회를 이사회에 신설해 회사의 경영전략이나 중요한 투자 관련 사항을 검토하도록 했다.


협력업체를 쥐어짜던 관행에서 벗어나 동반 성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례도 있다. 현대차(005380)·기아는 2012년부터 협력사 합작 채용박람회를 개최하며 업계의 인재 확보를 돕고 있다. 협력사에 필요한 특허권을 이전해주는 ‘특허권 무상 제공’과 매출 5000억 원 미만 협력사의 납품 대금을 현금으로 지급하는 등 유무형의 지원도 이어지고 있다. 현대차·기아와 공동 구매하는 방식으로 협력사의 구매 비용을 낮춰주기도 한다. LG(003550)전자는 협력사의 핵심 기술 자료를 정부 기관에 별도로 보관해 기술 유출 우려를 없앤 ‘기술자료임치제도’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2013년부터 협력사가 기술 자료를 임치할 때 드는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고 지난해까지 총 1400건 이상의 임치를 도왔다.


LG는 국내 4대 그룹 가운데 처음으로 ESG 데이터와 관련해 그룹 차원의 종합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지난해에 일찌감치 이사회 내 ESG위원회를 설치했고 ‘LG ESG지수’까지 개발 중이다.


한화는 윤리 경영을 위해 국제사회에서 비인도적 무기로 분류되는 방산 부문의 분산탄 사업을 완전히 매각하기도 했다.


이처럼 기업들이 사회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정치권은 여전히 반기업 정서에 기반해 각종 규제를 쏟아낸다. 학계에서는 정부가 규제 대신 인센티브로 기업의 건전한 변화를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동근 명지대 경제학과 명예교수는 “다른 경제주체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규제를 없애고 자유를 줘야 한다. 그래야 기업도 생동감을 되찾아 변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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