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6일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과 노동·교육 등 3대 사회 개혁에 드라이브를 건 것은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을 위해 필수불가결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은 소상공인 손실보상을 위한 추가 경정안의 조속한 처리와 더불어 3대 개혁을 핵심 화두로 던지며 우리 경제의 체질 개선을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국가부채를 조정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춰 노동·교육 개혁이 이뤄져야 미래 성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주문을 한 것이다.
◇취임 일주일 만에 첫 시정연설… 개혁 과제도 가장 많아=윤 대통령의 이날 시정연설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이른 시기에 이뤄졌다. 이전 가장 빠른 기록은 문재인 전 대통령(33일)이었는데 윤 대통령은 20여 일이나 당겨 시정연설을 진행했다.
연설 내용 역시 역대 대통령의 첫 대국회 메시지 가운데 가장 개혁 과제를 많이 담았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라는 파동 속에서 취임 138일 만에 국회를 찾은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기 진작을 위한 규제 개혁과 기업 감세 법안의 처리를 요청했다. 기초연금 파동이 끝나고 취임 267일 만에 국회 시정연설에 나선 박근혜 전 대통령도 창조경제 확산을 위한 법안 통과를 요구했다. 이들보다 국회를 훨씬 빨리 찾은 문 전 대통령은 재정 지출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 ‘소득주도성장’을 강조했다. 측근 비리에 대한 재신임 국민투표를 제안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 등의 사례를 봐도 역대 대통령 가운데 임기 내에 하나도 완수하기 벅찬 중대한 사회 개혁 과제를 세 개나 던진 지도자는 윤 대통령이 유일하다.
윤 대통령이 연금과 노동·교육 개혁을 강조한 배경에는 코로나19 이후(포스트코로나)의 시대에는 우리 사회의 근간을 구성하고 있는 이 문제들의 대전환 없이는 대한민국이 재도약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한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이 이날 국내 문제를 언급하기 전에 단도직입적으로 “지금 우리가 직면한 나라 안팎의 위기와 도전은 우리가 미뤄놓은 개혁을 완성하지 않고서는 극복하기 어렵다”고 강조한 부분에서도 읽을 수 있다.
윤 대통령은 대선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기간 우리나라가 직면한 고령화와 전 세계 최하를 기록 중인 저출산, 청년 실업 등으로 가속화되는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획기적 성장’이 필요하다고 수차례 강조해왔다. 전 세계적인 코로나19 확산으로 디지털 경제가 급속하게 성장했고 우리나라를 수십 년간 먹여 살린 조선과 철강·화학·자동차 등의 주력 산업도 양질의 일자리를 국내에서 만드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급변하는 미래 산업을 따라잡고 더 나아가 양질의 일자리까지 만들기 위해서는 산업 수요에 걸맞은 노동과 교육 개혁은 필수다.
◇재정 건전성 강조… 노동·교육 바꿔야 미래 성장 담보=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 들어 연간 200조 원이나 늘어난 국가 예산과 손도 대지 못한 연금으로 개혁의 충격을 완화할 최루의 보루인 재정 건전성부터 무너졌다고 진단했다. 이대로라면 2055년 국민연금은 고갈(국회예정처)되고 2092년까지 누적 적자가 2경 원(보건사회연구원)을 넘어서게 된다. 윤 대통령이 “지속 가능한 복지 제도를 구현하고 빈틈없는 사회안전망을 제공하려면 연금 개혁이 필요하다”고 호소한 것도 이 때문이다.
연금 개혁과 함께 노동·교육 개혁에 대한 강력한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윤 대통령은 3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서 “양극화 해소는 비약적인 성장 없이는 굉장히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산업 정책에 부합하는 교육 정책, 노동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빅데이터와 인공지능(AI), 초고속 통신망으로 연결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는 교육과 노동 개혁을 이뤄야 추락하는 잠재 성장률을 끌어올릴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미 초등학교부터 코딩과 AI 교육, 산업과 연계된 특성화고교, 전문대를 만들어 과학기술 강국에 맞는 인재를 육성하는 국정과제도 마련했다. 동시에 변화에 맞춰 노동을 유연화하는 대신 사회안전망을 강화하는 ‘유연 안정성’을 추구하는 복안이다.
윤 대통령이 이날 밝힌 연금·노동·교육 개혁은 양극화를 극복하고 글로벌 중추 국가로 발돋움하기 위한 ‘패키지’인 셈이다. 윤 대통령이 취임 첫 국회 무대에서 2000년대 초 침체의 늪에 빠진 독일 경제를 노동과 사회보장제도 개혁, 규제 완화 등을 담은 ‘하르츠 개혁’으로 극복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와 같은 개혁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이에 대해 “위기에 처한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라는 절박함에서 당장 개혁이 필요하다는 절박함을 표현하고 국회에 협조를 요청하신 것”이라고 말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5년간 실종된 문제인데 성장과 양극화 해결, 지속 가능한 복지를 해결하기 위해 의지를 보인 것만 해도 환영할 일”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