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균 “문화 정책에도 자유정신 깔려야”<취임사 전문>

취임식 갖고 문체부 장관 업무 시작

사진 제공=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사진)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6일 취임하면서 공식 업무를 시작했다. 취임사에서는 다시 ‘자유’를 강조했다.


박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앞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자유의 가치 재발견’을 언급하며 “자유 정신은 문화예술의 빼어난 독창성과 대담한 파격, 미적 감수성과 재능을 선사한다. 자유 정신이 깔린 정책 의제도 비슷한 이치로 작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청와대 개방의 시각적 충격과 상징성을 강조하면서 “그 풍광들은 여러가지 자극과 상상력을 주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재발 우려를 의식한 듯 “규제 개혁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다”며 “문화예술 세계에 익숙할수록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다짐이 제대로 실천된다고 믿는다”고 강조했다.


관광산업에 대해서는 “관광산업은 K콘텐츠, 한류 연관 산업, 전통문화와 함께 어울리면서 활기를 띠게 된다”며 “ 관광명소의 흥행에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합니다”고 말하는데 그쳤다.


/최수문기자 chsm@sedaily.com


<이하 취임사 전문>


문화체육관광부 가족 여러분. 장관 박보균입니다. 반갑습니다. 인사드립니다.


존경하는 가족 여러분.


청와대가 국민 품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 시각적 충격은 압도적입니다. 청와대 개방의 의미는 거대하고, 그 상징성은 탁월합니다. 용산 집무실은 국민에게 강렬하게 다가섭니다. 그 장면들은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윤석열 대통령 시대 개막의 기운을 분출하고 있습니다. 그 풍광들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자극과 상상력을 주고 있습니다. 저는 제 시각과 방식으로 우리 부처의 업무 자세와 방향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33년 전인 1989년 기자 박보균은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습니다. 그때는 소련 시절이었고 도시 이름은 레닌그라드였습니다. 그곳 예르미타시(에르미타주)미술관의 수많은 작품은 숨 막히는 체험이었습니다. 파리·런던·뉴욕·마드리드·이스탄불·베이징·암스테르담의 박물관·미술관·기념관도 찾아다녔습니다. 그곳에서 저의 관심사인 문화와 정치, 문명과 역사, 언어와 리더십을 추적하고 해부했습니다. 그곳에는 일류국가의 자격과 조건들이 암시하듯 담겨 있고, 때로는 직설로 선언하는 듯했습니다. 그것은 “부국강병, 즉 경제력과 군사력으로만 일류국가는 완성되지 않는다. 경제와 군사에다 문화가 번영해야만 일류국가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는 세계사에 경이로운 성취로 기록됐습니다. 이제 세계 시민들은 우리의 문화예술 콘텐츠에 갈채를 보냅니다. K컬처는 국제사회 속에 대한민국의 브랜드가 됐습니다. ‘문화 매력 국가, 문화강국’으로 가는 토대가 단단히 마련됐습니다. 그 성과의 상당 부분은 우리 가족들이 앞장서서 만들었습니다. 이런 시점에 제가 장관이 된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우리 가족들은 전체 공직사회에서 가장 우수하고 헌신과 소명감 또한 뚜렷합니다. 그런 자랑스러운 평가를 받는 여러분과 함께 일을 할 수 있어 영광스럽고 기쁩니다.


문화체육관광부 가족 여러분.


문화예술 작품은 작가의 창의력과 기량, 숙고와 열정의 산물입니다. 그 속에는 구도자(求道者)적 예술혼이 펼치는 ‘장엄한 순간’도 있습니다. 저는 그 세계를 배우고 알려고 했습니다. 헤밍웨이의 소설 ‘무기여 잘 있거라’ 현장인 슬로베니아의 알프스 계곡,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의 스페인 내전의 흔적을 찾아갔습니다. 그곳에서 노벨상 작가 헤밍웨이의 문학적 승부수를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스페인 마드리드의 레이나 소피아 미술관엔 나치 히틀러의 만행을 묘사한 피카소의 ‘게르니카’가 걸려 있습니다. 20세기 최고 대작을 본 다음 저는 작은 도시 게르니카로 떠났습니다. 피카소의 천재성, 예술의 독보적인 정치·역사적 영향력을 실감하기 위해서입니다. 중국 룽징시에 있는 시인 윤동주의 옛집은 그곳의 문화공정 속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윤동주가 다녔던 일본 도시샤대학에서 그의 시비(詩碑)와 마주했습니다. 윤동주의 고뇌와 저항, 신선한 언어들이 얽혀 뿜어내는 예술의 절정을 담아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경험들은 저를 단련시켰습니다. 문화예술 세계에 들어갈수록 문화예술인들을 향한 저의 시선은 정중하고 겸손해졌습니다. 저는 확신합니다. 문화예술 정책의 설계는 그 세계와 거기에 속한 분들을 알고 이해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민간의 자율성은 존중받아야 합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합니다. 낮은 자세의 소통과 공감에서 나오는 정책은 살아 숨 쉽니다. 규제 개혁도 같은 맥락에서 접근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 세계에 익숙할수록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다짐이 제대로 실천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스포츠의 쾌거는 산업화와 민주화 이전부터 존재했습니다. 예전 동대문에 야구장과 종합경기장이 있었습니다.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가 생기면서 없어진 스포츠 단지입니다. 지금도 그곳을 지날 때면 고교야구와 축구 경기장의 응원 함성이 제 귓전을 울리는 듯합니다. 스포츠 영웅들의 감동적인 드라마에 정책담당자들은 친숙해야 합니다. 스포츠의 지평은 끊임없이 넓어지고 국민의 관심 영역은 커지고 있습니다. 스포츠 관련 정책은 정교하게 진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가족들은 역사·문화 콘텐츠를 다양한 방식으로 생산·전시·유통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한 일류 문화 국가들의 원칙과 전통, 성찰을 저는 기억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역사적 진실과 상식에 충실히 복무하라, 또한 주관적인 관점을 투입하거나 독단적인 색깔을 입히려는 유혹에 빠져선 안 된다는 겁니다. 그것은 편향과 변조, 왜곡을 경계하고 차단하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전통문화 유산 분야는 의미 있고 유쾌한 실행 과제입니다. 미국 워싱턴DC에 19세기 말 대한제국 공사관이 있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대사관 격인 미려한 외모의 3층 건물입니다. 그 외교공관은 을사늑약과 망국으로 일본에 빼앗기고 해방, 6·25 한국전쟁 그 후 격동기 속에 한 세기 이상 우리 현대사 목록에서 사라졌습니다. 제가 공사관 건물이 살아있다는 사실을 알고 재매입 운동에 나선 것은 문화유산에 대한 저의 열망과 신념의 격렬한 반영이었습니다.


국내외에 남아 있는 문화유산 가치의 발견과 상승, 확장에 치열하고 세련된 열정을 쏟아부어 봅시다. 그런 작업은 K컬처의 경쟁력을 한껏 높여 줍니다. 관광산업은 K콘텐츠, 한류 연관 산업, 전통문화와 함께 어울리면서 활기를 띠게 됩니다. 관광명소의 흥행에는 스토리텔링 마케팅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이를 위해선 언어의 선택과 배치에 능숙해야 합니다.


자랑스러운 가족 여러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저는 그 대목에서 위대한 항일 투사 윤봉길을 떠올렸습니다. 서울 양재 시민공원 ‘매헌 윤봉길 의사 기념관’에 가면 윤봉길 조각상이 있습니다. 거기에 나이 19세의 윤봉길이 쓴 깨달음의 놀라운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인생은 자유의 세상을 찾는다. 사람에게는 천부의 자유가 있다.” 자유는 윤봉길의 결의와 집념을 생산했습니다.


자유는 예술적 진취와 도전 정신을 주입합니다. 자유 정신은 문화예술의 빼어난 독창성과 대담한 파격, 미적 감수성과 재능을 선사합니다. 자유 정신이 깔린 정책 의제도 그와 비슷한 이치로 작동할 겁니다.


‘국민이 진정한 주인인 나라.’ 그것의 정책적 과제는 선명합니다. 온 국민이 공정하고 차별 없이 문화를 나누고 누려야 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문화의 공정한 접근 기회가 보장’돼야 합니다. 보편적인 문화 복지는 문화 공영으로 강화됩니다. 장애인들의 문화예술·체육·관광의 환경이 좋아지면 모든 사람의 그 분야 환경도 좋아진다고 저는 믿고 있습니다. 코로나 세계적 대유행(팬데믹)으로 장기간 어려움을 겪고 있는 관련 업종의 지원책은 계속 면밀하게 마련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 국민 속으로 들어갑시다. 문화예술·체육·관광 현장에 있어야 합니다. 격식에 기대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듣고 어울려야 합니다. ‘국민이 주인인 나라’는 우리가 맡은 분야에서 선제적으로 짜임새 있게 이뤄나가야 합니다. 제가 앞장서서 그런 자세로 장관직을 수행하겠습니다.


오늘 여기에 본부뿐 아니라 소속 기관의 가족까지 오셨습니다. 바쁘신 가운데 참석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여러분의 경험과 비전, 안목과 지혜는 특별하고 소중한 자산입니다. 이 자리는 그것을 공유하고 나누고자 마련했습니다. 저도 동참할 수 있어 뿌듯합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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