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5.4%를 기록했던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경제성장률이 올해 에너지 수급 상황에 따라 0%대로 곤두박질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잦아들면서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낙관적인 시각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자취를 감췄으며 오히려 에너지 문제로 유럽 지역 경제가 침체에 빠져들 수 있다는 비관론이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블룸버그통신등은 유럽연합(EU)집행위원회가 16일 내놓은 유럽 경제전망 보고서 초안에서 EU의 올해 경제성장률을 2.7%로 하향 조정했다고 이날 보도했다. 애초 EU집행위는 2월 보고서에서는 올해 EU의 경제성장률을 4%로 예측했지만 석 달 만에 전망치를 1.3%포인트 낮춰 잡은 것이다. 2023년 전망 역시 2월 2.8%에서 0.5%포인트 낮은 2.3%로 수정했다.
다만 이는 우크라이나 전쟁 양상과 에너지 수급 상황이 현재와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제를 두고 뽑아낸 수치다. EU집행위는 유럽 각국이 러시아산 가스 공급을 완전히 중단하고 이에 따라 에너지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 올해 경제성장률이 0.2%에 불과할 것으로 추산했다. 사실상 성장이 멈추는 셈이다. 성장세 둔화는 내년까지 이어져 1.3%로 예상된다고 EU집행위는 전망했다.
유럽 지역 경제를 뒤흔드는 핵심 요인은 인플레이션이다. EU집행위는 보고서 초안에서 올해 연간 물가상승률이 6.1%에 이를 것으로 분석했다. 2%인 유럽중앙은행(ECB)의 인플레이션 관리 목표를 훌쩍 뛰어넘는 수준이다. 내년에도 2.7%로 역시 ECB의 목표보다 높다. 앞서 ECB는 2월 경제전망을 낼 때까지만 하더라도 인플레이션이 올해 3.9%에서 내년 1.9%로 떨어질 것으로 봤다. 전쟁 발발 이후 인플레이션이 가중된 셈이다. 실제 4월 들어 유럽 지역의 에너지 가격은 전년 대비 38% 오르며 유럽 지역의 경제 기반을 흔드는 분위기다.
유럽 지역 경기 침체에 대한 경고 목소리는 산업계과 금융계를 불문하고 이어지고 있다.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 상황이 악화된다면 유럽은 경기 침체에 빠져들게 될 것”이라며 “이는 몇 분기 더 뒤의 이야기지만 경기 침체가 올 것이라고 보고 있으며 세계에 냉전이 다시 찾아온 만큼 동맹들끼리 군사뿐 아니라 경제 분야의 전략적 투자에도 힘을 합쳐야 한다”고 경고했다. 독일에 본사를 둔 보쉬의 스테판 하르퉁 CEO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유럽에 커다란 경기 침체가 오고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며 “우리가 사업을 하는 곳곳에서 수요의 위기를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면서 ECB의 금리 인상 고민도 커지고 있다. 애초 ECB는 유럽 내 인플레이션이 심화하면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상에 발맞춰 7월 금리를 올릴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이 경우 2011년 이후 첫 금리 인상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ECB가 내년부터는 인플레이션보다 경기 침체를 더욱 고려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유럽 최대 자산운용사 아문디의 빈센트 모티에르 최고투자책임자는 “ECB는 현재 -0.5%인 예금금리를 연말까지 0.25%포인트로 두 차례 인상하겠지만 그것이 끝일 것”이라며 “ECB는 유로존이라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와해되지 않도록 동원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