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졌잘싸’ 황유민 “18번홀 두번째 샷, 꿈에선 섕크 나더라고요”

KLPGA 투어 간판 박민지와 혈투 끝 1타 차 준우승
티샷 디보트 빠지는 불운 “확신없이 들어간 제 잘못”
결론은 연습, 다음날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 매달려
‘아마 졸업’ 7월 프로턴 “깡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어”

진지한 표정으로 코스를 파악하는 황유민. 아이언 샷과 퍼트가 좋은 선수인데 최근 들어 장타도 장착했다. 사진 제공=KLPGA

“꿈에서는 그 상황에서 섕크가 나더라고요. 새벽 4시에 깼죠. ‘연습 더 열심히 해야겠다’ 다짐하고 다시 잠들었어요.”


‘화제의 준우승자’ 황유민(19·한국체대)은 16일 남서울CC 연습장에 있었다.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의 지도를 받으며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평소처럼 연습했다. 전날 혈투라고 할 수 있는 경기를 치렀지만 휴식보다 연습에 대한 목마름이 더 컸기 때문이다.


황유민이 말한 ‘그 상황’은 15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 4라운드 18번 홀(파4) 상황이다. 투어 간판 박민지(24)와 같은 조에서 공동 선두를 달리던 황유민은 이 홀 두 번째 샷을 그린 오른쪽 벙커에 빠뜨리는 바람에 1타 차 공동 2위로 마감했다. 발보다 낮은 위치에 있던 페어웨이의 볼은 그린에 미치지 못했고 벙커 샷 뒤 파 퍼트는 홀을 외면했다.


중반까지 단독 선두를 달린 황유민은 우승까지 내달렸다면 최혜진(23) 이후 4년 9개월 만의 아마추어 우승으로 내년 정규 투어 시드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계속 생각나는 장면이 있느냐는 물음에 황유민은 자연스럽게 “미스가 크게 났다”는 마지막 홀 세컨드 샷을 얘기했다. "핀까지 92m 남기고 48도 웨지로 쳤어요. 볼 위치가 디보트(잔디의 팬 자국)이기는 했는데 그렇다고 어려운 디보트는 아니었고요.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는데도 샷 하기 전에 잘 친다는 확신이 없는 상태로 들어간 거죠. 다시 친다면요? 자신 있게 치는 것에만 집중하고 들어갈 것 같아요.”



캐디 제안을 선뜻 받아준 친한 국가대표 오빠 유현준(오른쪽)이 큰 힘이 됐다. 사진 제공=KLPGA

아쉬움만큼 얻은 것도 많은 대회였다. 황유민은 “구질을 다양하게 치는 것을 좋아하는데 이번 대회에서는 그런 부분에서 미스가 많았다. 부족함을 알았으니 더 연습하고 보완해야겠다”면서 “한편으로는 샷이 안 좋아도 퍼트만 잘 따라주면 언제든지 잘 칠 수 있겠다는 확신도 얻었다”고 했다.


2만여 구름 갤러리 앞에서 챔피언 조로 경기 하는 새로운 경험을 한 황유민은 “지난해 한국여자오픈(공동 4위·박민지 우승)은 무관중이어서 이렇게 갤러리가 많은 대회는 처음이었다”며 “하지만 갤러리가 많다고 해서 긴장이 된 것은 아니었다. 더 재밌고 힘이 났다. 저를 모르실 줄 알았는데 응원을 해주셔서 감사했다”고 했다.


성적만큼 화제가 된 것은 드라이버 샷 거리였다. 가녀린 체구로 250야드를 가볍게 날렸고 내리막이 있는 홀에서는 280야드도 찍었다. “제가 여태까지 했던 운동량은 장난이라고 할 정도로 선수촌에서 강도 높은 훈련을 했다”는 국가대표 황유민은 “몸이 좋아지니까 헤드 스피드도 3마일 정도 늘어서 드라이버 샷이 평균 10야드 정도 멀리 간다”고 설명했다.


이번 대회 뒤 주변에서 들은 말들을 정리하면 대개 ‘아쉽지만 그래도 자랑스럽다’다. 캐디를 맡아준 친한 국가대표 오빠 유현준이 최종 라운드 중 한 말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네 덕분에 내가 이런 자리에 있다니 자랑스럽다’.


다음 달 한국여자오픈에 출전할 예정인 황유민은 7월에는 점프(3부) 투어 시드순위전에 참가하며 프로로 전향한다. 점프 투어에서 잘 치면 드림(2부) 투어로 올라가고 거기서 또 잘 하면 내년 정규 투어 시드를 얻는다. 황유민은 “저만 믿고 치면 될 것 같다”고 했다. 국가대표 자격을 1년 더 유지하느라 내년에 정규 투어에 올라가도 동갑 친구들보다는 1년이 늦다. 그래도 황유민은 “조급함은 전혀 없다”고 했다. 지난달 아시안게임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훌훌 털어낸 지 오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를 따라 연습장에 갔다가 골프채를 처음 잡은 황유민은 이듬해 첫 출전한 대회에서 86타를 치면서 선수의 길을 걸었다. 황유민은 “‘시원시원하다’ ‘저 선수는 정말 뭔가 다르다’ 이런 말을 앞으로 듣고 싶다”며 “‘깡’이 있는 선수로 기억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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