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벤처캐피탈도 '안전 선호'…창업 초기기업 투자 24%뿐

창업 중·후기에 투자 76% 몰려
수익성에 급급 성장성 외면 지적
업력 따라 초·중·후기 구분 기준
매출 바탕 성장단계별 변경 주장

“벤처캐피탈(VC)이 창업 초기 기업 투자를 외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판교테크노벨리에 입주한 소프트웨어 개발업체 A사 사장이 기자와 첫 만남에서 내놓은 넋두리다. 창업한 지 2년 차로 회사 특성상 초기 개발 자금이 많이 필요해 여러 VC들을 찾아 다녔지만 실적이 없는 창업 초기 회사라는 이유로 외면 받아 투자금을 유치하기가 너무 힘들다는 하소연이다.




이처럼 투자금 조달이 어렵다는 창업 초기 회사가 많아지면서, 코로나 여파를 빌미로 VC들이 벤처기업을 투자할 때 성장성을 외면한 채 당장 실적이 좋을 안전한 기업 위주의 투자만 선호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7일 벤처캐피탈협회가 최근 발표한 ‘2022년 1분기 벤처캐피탈 시장 동향’ 보고서에 따르면 업력별 신규 투자 성향 결과 2021년 한 해 동안 창업 초기 기업(창업 3년 미만)에 투자한 실적은 전체 신규 투자액 7조6802억 원의 24.2%(1조8598억 원)에 그쳤다. 중기(창업 3년 이상~7년 미만) 기업은 45.3%(3조4814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후기(창업 7년 이상) 기업이 30.5%(2조3390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창업벤처 10개 사 가운데 8개 사 꼴로 실적이 안전한 중기와 후기 창업기업에 주로 투자한 셈이다. 창업 초기 기업이 투자금 유치에서 외면 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벤처협회 한 관계자는 “VC의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실적이 꾸준히 줄어들고 있다”며 “코로나 여파가 있지만 중기와 후기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액이 80%에 가깝다는 건 당장의 수익성에 급급한 안전한 투자만 선호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는 3년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2019년 32.5%(1조3901억 원)에서 2020년 30.7%(1조3205억 원)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20%대(24.2%)로 추락했다. 투자액이 1조3000억 원 규모에서 1조8000억 원으로 다소 커졌지만, 전체 신규 투자액은 계속 줄어들고 있다. 반면 중기·후기 기업 투자액은 2020년 69.3%에서 지난해 75.8%로 증가했다.


일각에서는 창업 기업의 분류 기준을 업력이 아닌 매출액 기준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업력에 따라 초·중·후기로 구분하는 현행 기준을 매출액을 토대로 기업의 성장 단계별로 나눠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매출액과 이익을 고려해 각각 4단계, 3단계로 구분해 투자 형평성을 실현하고 있다.


벤처캐피탈협회 관계자는 “현장에서 느끼는 어려움을 잘 알고 있지만 VC 입장에서도 수익성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며 “창업 초기 단계에 대한 VC 투자가 확대되려면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세컨더리펀드와 인수·합병(M&A)시장의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창업벤처 초기 기업들 또한 분류 기준 논쟁은 오랜 기간이 지속된 만큼 새 정부가 출범한 이제라도 서둘러 개선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예컨대 창업 3년 이내 또는 매출액 10억원 미만을 초기 기업으로 분류하면 VC의 초기 기업 투자 비중은 35% 이상으로 증가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주장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 규모는 늘고 있지만 전체에서 신규 투자액 비중이 줄어드는 흐름을 눈 여겨 보고 있다”며 “창업벤처 현장에서 바라는 요구도 잘 알고 있는 만큼 VC들의 투자금이 적제적소에 잘 흘러가도록 정책적 보완에 신경 쓰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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