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 중 핵심 과제였다. 문재인 정부는 세부 과제로 비정규직의 사용사유제한제를 도입할 계획이었다. 생명과 안전 등 특정 분야 업무에 한해 비정규직을 둘 수 없도록 한 게 골자다. 이를 통해 정규직 직접 고용을 늘리는 방식으로 비정규직을 줄이겠다는 목표였다. 하지만 제도 도입은 결국 불발됐다. 사회적 논의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합의하지 못할 만큼 노사 간 온도 차가 컸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사용사유제한제 도입 불발은 노동정책에서 정부 의지보다 사회적 논의와 합의가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문재인 정부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전면에 내세웠다가 입장이 상반된 노사의 갈등을 지속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여기에 코로나19, 산업구조 변화 등이 맞물리면서 비정규직 규모가 급속하게 늘어나는 부메랑을 만났다.
17일 통계청과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비정규직 근로자는 806만 6000명에 달한다. 800만 명 선을 넘긴 것은 2003년 이후 처음이다. 임금 근로자 가운데 비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도 38.4%로 역대 최고다. 코로나19 사태로 폐업이 늘고 배달 등 플랫폼 노동자가 급격히 늘어난 게 주요 원인이다.
하지만 비정규직 제로화까지 선언했던 문재인 정부에서 정작 비정규직 비율이 최고치로 늘어난 상황은 시장 원리를 무시한 데 따른 예정된 결과라는 지적이다. 집값이 억누를수록 되레 오르는 원리처럼 한국의 고용·산업구조상 비정규직도 인위적으로 줄일 수 없다는 얘기다. 문재인 정부는 5년간 370개 공공기관에서 10만여 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하지만 극심한 노사·노노 갈등을 불러왔다. 인천국제공항공사·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여러 공공기관에서 공정성 논란이 제기됐다. 노동계는 문재인 정부 마지막까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약을 지키라고 촉구했다.
더 큰 문제는 지난달 20일 국제적 노동 규범인 국제노동기구(ILO) 핵심 협약 3개가 추가로 발효됐다는 점이다. 경영계는 ILO 핵심 협약 발효를 두고 파업과 같은 단체행동권이 크게 확대됐다며 우려하고 있다. ILO 협약이 정치 파업을 금지하고 있는 한국 노조법 위로 올라선다는 것이다. 법조계도 ILO 핵심 협약이 산업 현장 곳곳에서 기존 법과 충돌할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ILO 핵심 협약 비준 역시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에 담긴 노동 분야 핵심 공약이다. 문재인 정부는 협약 이행을 위해 일명 ILO 3법(노동조합법·공무원노조법·교원노조법) 개정안을 만들었다. ILO 3법에는 해고자·실직자 등 비종사 근로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등 이전보다 노조권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영계는 윤석열 정부에서 노사 갈등이 더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