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작품은 너무 싱거울 정도로 단순합니다. 커다란 자연석을 사용했고, 스테인레스 판을 거울처럼 갈아서 잔디밭에 놓고 그 위에 돌을 얹은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이 단순한 하나의 만남과 조합에 의해 일상에서 잘 느끼지 못하는 어떤 반짝이는 우주적 찰나가 지속되고, 보편화되는 장을 여는 것. 그것이 바로 이번에 제가 제시한 작품입니다.”
세계적 미술 거장으로 추앙받는 이우환(86·사진)의 신작 설치작품 ‘관계항-장소성’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성북구 안암동 고려대학교 경영대학 LG-포스코 경영관 광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고풍스런 건물로 둘러싸인 교정에 거울처럼 반짝이는 가로·세로 4m, 3m의 철판과 높이 1m정도의 멀뚱한 돌덩이 하나가 자리를 잡으니 지나던 학생들도 한 번씩 돌아본다. 프랑스 베르사유 궁전, 뉴욕 구겐하임미술관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유수의 미술관에 대표작이 소장된 이우환이지만 대학의 의뢰로 조각이 설치되기는 처음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제막식에 맞춰 방한하지 못한 이우환 작가는 앞서 영상으로 진행한 이용우 중국 통지대학 석좌교수(전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이사)와 대담에서 “내가 일본에서 가르쳤던 대학에서 몇 번 제의가 있었지만 기회가 잘 닿지 않았는데 뜻밖에도 고려대학으로부터 작품 제안을 받고 감격했다”고 밝혔다.
고려대 경영대학에서는 지난해 5월께 역사문화위원회를 만들고 경영인이 놓쳐서는 안될 감성경영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미술작품 설치를 추진했다. 자문 요청을 받은 진영선 고려대 명예교수가 이우환 작가를 추천했고, 이용우 박사가 준비과정을 주도했다. 배종석 고려대 경영대학장은 “이 작품은 높은 품격의 대학에서 완미(完美)를 추구하며 미래로 나아가고자 하는 우리 마음의 문”이라며 “지성과 이성에 감성을 더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작품에 대해 이우환 작가는 “돌은 자연의 가장 대표적인 것 중 하나이며, 그 돌의 일부 요소를 추출해 산업사회에서 추상화한 것이 철이라 ‘철의 어머니가 돌’”이라며 “자연 세계에서 산업사회가 되면서 자연 세계의 대표인 돌과 산업사회의 대표인 철을 사용하는데, 어머니와 자식 같은 관계의 이들처럼 지구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지구를 넘어선 우주적인 느낌을 갖는 순간과 장을 열어보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이 작가는 “예술작품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겠지만, 일상성에서 잠깐 비켜나가고 깨어나는 순간을 느끼게 하는 차원을 제공하는 것이 예술가의 몫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예술을 배움의 터의 한구석에 연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우환 작가가 전하는 영감에 가장 적극적으로 응한 경영인이 고(故) 이건희 회장이다. 이 작가는 이 회장을 기리는 추모글 ‘거인이 있었다’에서 “예술가에겐 비약하거나 섬광이 스칠 때가 있는 것 같은데, 어떤 것이 계기가 되나요’라고 물었다”는 이 회장을 “철인이나 예술가로 생각된다”고 적은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