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파식적] 피시앤드칩스


1950년대 이후 영국과 아이슬란드는 어업권 분쟁에 휘말려 세 차례에 걸쳐 ‘대구 전쟁’을 벌였다. 영국 어선들이 국민 음식인 ‘피시앤드칩스(fish and chips)’에 들어가는 대구를 더 많이 잡기 위해 아이슬란드 해역까지 진입해 싹쓸이 조업에 나섰기 때문이다. 양국은 대구 어획량을 놓고 협상을 벌이는 과정에서 한때 국교 단절까지 가는 진통을 겪은 끝에 200해리 배타적 경제수역을 인정하는 선에서 화해했다.


피시앤드칩스는 흰살 생선에 두꺼운 튀김옷을 입혀 감자튀김과 함께 내놓는 영국의 대표 음식이다. 피시앤드칩스는 1860년대 방직 공장이 많은 이스트 런던에 거주하던 노동자들의 길거리 음식에서 유래했다. 철도의 발달로 도시 지역에 값싼 생선 공급이 늘어나면서 보급이 확대됐다. 누구나 간편하게 탄수화물과 단백질·지방을 섭취할 수 있는 고열량 식품으로 자리 잡았다. 덕분에 1900년쯤에는 3만 곳 이상의 점포가 손님을 맞았다.


영국인들은 피시앤드칩스를 먹으며 전쟁의 고통을 이겨냈다. 제1·2차 세계대전 당시 값이 싼 피시앤드칩스는 하층민들도 쉽게 먹을 수 있어서 사회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영국의 전국생선튀김연맹(NFFF)은 1차 대전 종전 직후 “우리 업계가 빈민층의 굶주림과 폭동을 막는 역할을 했다”는 성명서까지 내놓았다.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는 피시앤드칩스가 전쟁을 이겨내는 데 도움을 줬다며 ‘우리의 좋은 동료’라는 찬사를 보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는 암기하기 쉽다는 이유로 ‘피시앤드칩스’가 연합군의 비공식 암호로 사용되기도 했다.


우크라이나 사태 등의 영향으로 생선 가격이 급등해 피시앤드칩스 가게들도 심각한 경영난에 빠졌다. 앤드루 크룩 NFFF 회장은 “9개월 내 1만 개의 식당 중 3분의 1이 문을 닫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4월 영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40년 만에 최고치인 9%까지 치솟았다. 인플레이션 위기는 한국에도 밀려오고 있다. 정부가 ‘물가와의 전쟁’에서 성과를 거두려면 돈 풀기 정책부터 멈추고 안정적인 원자재 수급 대책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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