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0일 한국을 찾는다. 지난해 1월 취임 이후 처음으로 방문하는 동아시아 국가로 한국을 택했다. 하지만 정치권과 재계는 무엇보다 방한 첫 행선지를 바이든 대통령이 세계 최대 반도체 공장인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로 택한 점에 주목하고 있다.
외교가의 한 관계자는 “특정 민간 기업 방문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미국 측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미국) 현지에 보여주고 싶다는 강한 의지를 전했다”고 말했다.
21일 진행되는 한미정상회담은 미국 시간으로 새벽에 진행된다. 하지만 바이든 미 대통령이 20일 국내 시간으로 오후 늦게 도착해서 평택 공장에서 윤석열 대통령과 만나면 미국 시간으로 오전에 전달된다. 그만큼 한미가 기술 동맹의 핵심 자산인 반도체로 결속하는 모습을 미국 사회에 보여주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①평택 캠퍼스 美반도체 장비·韓 메모리 협력 상징=평택 캠퍼스의 속살을 들여다보면 양국 정상이 일정에 담은 상징성을 알 수 있다. 평택 캠퍼스는 삼성전자의 최신 메모리 반도체와 칩 파운드리(위탁 생산) 라인이 가동되고 있다. 메모리 반도체와 파운드리는 미국이 주도하는 기술 동맹의 핵심 축에 해당하는 전략 기술이다.
정치권과 업계는 특히 평택 캠퍼스에 있는 파운드리 생산 라인에 주목하고 있다. 이곳은 퀄컴·엔비디아 등 세계 굴지 반도체 설계 업체들의 첨단 칩을 대신 생산해주는 7나노(㎚·10억 분의 1m) 이하 극자외선(EUV) 공정을 운영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반도체 설계 기술을 가진 미국과 생산 기술을 가진 한국의 전략이 집결된 곳이 평택 캠퍼스인 셈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삼성전자가 세계 파운드리 1위 업체 TSMC, 미국 인텔 등 라이벌 업체보다 EUV를 먼저 도입해 평택 캠퍼스에서 생산 규모를 확대해가고 있다는 점이다. 바이든이 첫 방문지로 용산 대통령실이나 안보와 관련된 장소보다 삼성전자 최첨단 반도체 기지를 방문한 데는 미국이 한국과 신기술 공급망의 요충지를 전 세계에 부각시키며 기술 동맹을 굳건히 하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다.
②평택 캠퍼스 공급 확대·한미 반도체 동맹 견인=더욱이 평택 캠퍼스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의 이해관계와도 맞닿아 있다. 미국의 반도체 칩 설계 업체들은 사상 초유의 파운드리 공급 부족 사태를 겪고 있다. 고도화하는 정보기술(IT) 분야로 반도체 쓰임새가 훨씬 늘어나는 반면 초미세 회로 공정을 구현할 수 있는 파운드리 업체는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대만 TSMC, 삼성전자 외에 7나노 이하 반도체를 구현할 수 있는 업체는 없다. 이 때문에 미국 내에서도 반도체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이다.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행정부는 실업률을 잡았지만 물가가 뛰며 지지율이 흔들리고 있다. 여기에 모든 산업 공정의 핵심인 반도체를 구하지 못해 공급 측면에서 물가 압박도 상당하다.
이에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에서 첫발을 평택 공장에서 내디뎌 미국에 몰려 있는 굴지의 칩 설계 회사들과 삼성 파운드리의 협력을 이끌어내고 미국 내 공급 부족도 해소하려는 전략을 짰다는 것이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삼성전자 방문에 크리스티아노 아몬 퀄컴 최고경영자(CEO)가 함께 참석하는 것도 삼성전자와 미국 대표 칩 업체 퀄컴 간 파운드리 협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복안이라는 게 업계의 해석이다.
③삼성 투자로 韓美 ‘반도체 스와프’ 윈윈=삼성전자는 양국 정상이 모인 자리에서 평택 캠퍼스 4공장에 메모리 반도체 라인과 파운드리를 대대적으로 증설하는 계획을 내놓을 수 있다고 업계는 보고 있다. 미국은 화답으로 타 국가로 수출을 제한하고 있는 반도체 장비 공급에 물꼬를 틀 가능성이 높다.
최근 반도체 장비 수요 폭증으로 업체들의 납기가 지연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업체들은 반도체 라인 투자 계획도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런데 이번에 바이든 대통령은 삼성전자와 미국 반도체 장비 업체 간에 막혀 있던 공급 통로를 확장하면서 한국 반도체 업계와 경제안보 동맹을 과시할 가능성도 있다.
기술 동맹으로 격상된 양국이 반도체 협력을 강화하면 양국 기업의 투자 확대로 연결되고 일자리도 함께 늘어난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일자리 창출에 매진하는 바이든 대통령은 물론 윤 대통령도 약속한 민간 주도의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제안보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공급망 관리’”라며 “기업 간에는 경쟁이 치열해서 협력 안되는 부분이 있지만 보완적으로 협력하는 부분이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