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치 상승분 미리 받자"…옆집 전셋값 5억 뛰었다

[하반기 전세대란 공포]
■ 임대차법 시행 2년 앞두고 '들썩'
하반기 신규 입주물량 급감에
갱신만료 앞두고 시세상승 뚜렷
동작구 한달새 전셋값 1억 뛰어
계약갱신청구권 따라 5억 차이
동일 평형서 '3중 가격' 형성도
인상분 감당못해 월세전환 급증
서울 1분기 거래 첫 2만건 돌파



“2년 전 임대차 2법 때문에 전세 가격을 5%밖에 못 올렸어요. 올해 11월 계약이 만료되면 새 세입자를 받아 시세만큼 받을 계획입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헬리오시티 전용 84.98㎡를 보유한 A 씨는 2020년 11월 기존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갱신하면서 6억 5000만 원이던 보증금을 6억 8250만 원으로 올렸다. 그해 8월부터 임대차 2법이 시행되면서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5%만 인상한 것이다. 그는 “같은 평형 아파트가 올해 1월 12억 5000만 원에 신규 전세 계약을 했던데 그 정도는 받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올 8월 임대차 2법 시행 2년을 앞두고 서울 전세 시장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2년 전 도입된 임대차 2법(전월세상한제·계약갱신청구권제) 때문에 시세를 반영하지 못했던 집주인들이 이번에는 제값을 받겠다며 벼르고 있다. 같은 아파트 단지 내 동일한 평형도 계약갱신청구권 사용 여부 등에 따라 ‘3중 가격’이 형성되는 시장 왜곡도 고착화되고 있다. 임대차 2법 도입 전 하루 5만 건을 웃돌던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3만 건에도 못 미치고 있고 보유세 등의 부담 때문에 집주인들이 전세를 월세로 돌리는 경우도 크게 늘었다. 이런 가운데 서울 전세 시장의 ‘안전핀’ 역할을 해온 신규 아파트 입주 물량마저 6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나타나 ‘전세 대란’이 심각해질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17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8월 헬게이트가 열린다”고 말했을 정도다.


부동산R114가 집계한 올해 하반기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예정 포함)은 8326가구로 2016년 상반기 이후 6년 6개월 내 최저치다. 그간 주거 수요가 높은 서울에서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은 전세 시장의 과열을 막아주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올해 하반기에는 달아오른 전세 시장을 식혀줄 물량마저 부족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임대차 2법 시행 2년의 여파가 그대로 전세 시장을 휩쓸어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전세 대란의 조짐은 5월 중순인 지금도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임대인들은 새로운 전세 세입자를 구하면서 2년 후에는 계약갱신청구권 사용으로 5%밖에 못 올릴 것을 염두에 두고 ‘4년 후 가격’을 계산해 높은 전세 가격을 부르고 있다. 서울 동작구 흑석동의 아크로리버하임 전용 84㎡의 경우 조망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대개는 13억 원대, 일부 가구는 14억 5000만 원까지 부르고 있다. 이는 4월 체결된 13억 5000만 원보다도 1억 원이 높은 가격이다. 이 단지에서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했을 물건으로 추정되는 몇몇 물건이 지난해 12월과 올해 1월 8억 2000만 원과 9억 6000만 원에 계약된 것과 비교하면 같은 집이지만 전세 가격은 최대 5억 원까지 차이가 난다. 인근 공인중개사무소는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임대인이 한번 세입자를 받으면 4년은 유지된다는 생각에 되도록 높여서 받으려 한다”며 이처럼 ‘튀는’ 가격을 설명했다.


전세 대란 우려 속에 제일 걱정이 많은 이들은 2020년 8월 임대차 2법 시행 이후 한 차례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하고 전세 보증금 상승률을 5% 내로 막은 임차인들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2018년 하반기의 전세 가격으로 4년간 한 집에 머물렀기에 보증금 상승 폭이 누구보다도 클 수밖에 없다. 8월 말 전세 계약 만료를 앞두고 있다는 서울 마포구의 신 모(39) 씨는 “지난주에 집주인이 문자로 부동산에 내놓기 전에 계약을 새로 맺을지 물어봤다”며 “지금은 7억 8700만 원에 이 집(마포 래미안푸르지오)에 머물고 있는데 시세는 10억 7000만~11억 원인 데다 그마저도 별로 없어서 밤에 잠이 안 온다”고 털어놓았다.


단번에 전세 보증금을 수억 원 높여주기 어려워 결국 반전세를 선택한 임차인들도 많다. 현재 전세담보대출에 대한 제한은 따로 없지만 금리 상승이 예정돼 있어 고정적인 금액을 임대인에게 내는 것이 유리하다는 판단으로 풀이된다. 이는 전월세 동향 데이터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난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서울의 아파트 월세 거래량은 2만 1091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1분기 1만 6452건과 비교하면 27.7% 늘어난 결과다. 서울시가 관련 통계를 작성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1분기 아파트 월세 거래량이 2만 건을 넘어선 것이기도 하다. 전세의 월세화도 가속화되는 분위기다. 전체 아파트 임대차 거래 중 월세가 낀 거래 비중은 같은 기간 34.6%에서 38.7%로 올랐다. 4.1%포인트가 늘어난 수치다. 올해 1분기 월세 거래량이 2만 건을 이미 넘긴 만큼 지난해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서울 월세 거래량(7만 5586건)을 경신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한편 임대차 2법 시행으로 전세 시장이 왜곡되는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시세에 맞춰 맺은 신규 계약과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해 보증금 상승률을 5% 이내로 제한한 계약, 청구권을 쓰지 않은 연장 계약 등이 하나의 단지에 혼재해 ‘3중 가격’이 형성된 탓이다. 서울 서초구 반포자이 전용 85㎡에서 체결된 전세 가격은 올 들어서만 13억 3300만 원, 14억 4900만 원, 19억 원 등으로 크게 달랐다. 같은 면적의 가락동 헬리오시티도 올해 9억 1350만 원, 12억 원으로 가격 차가 큰 계약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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