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 육성을 하기 위해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K반도체 전략’을 수립하고 올해 1월에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육성법)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하지만 알맹이가 빠진 용두사미 특별법이라는 비판을 많이 받았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반도체 기업들이 인재 양성을 위해 수도권 대학의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지만 학령인구 감소 등의 문제로 인해 없던 일이 됐기 때문이다.
최근 인수에서도 반도체 산업 발전 및 인력 양성을 위해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린다. 하지만 이 같은 계획이 다시 용두사미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대학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도체 인력 양성 현황을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우선순위를 결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고급 지식을 갖는 석·박사급의 전문 인력이 많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이러한 석·박사급 인력 양성을 확대하기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자.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의 대학원 입시에서 최근 3년간 통계를 보면 2019년, 2020년, 2021년 각각 학생 선발 비율이 입학 정원 대비 85%, 84%, 83%에 그치면서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렇게 대학원 정원만큼 선발하지 못하는 상황은 서울대뿐 아니라 국내 대부분의 대학에서도 비슷하다. 따라서 입학 정원도 채우지 못하는 상황에서 대학원 정원을 더욱 늘린다고 석·박사급 인력 양성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렵다. 대신 대학원에 입학하기를 희망하는 학생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학부 정원을 증가시켜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반도체 기업들이 우선적으로 정부에 요청하는 사항이 학부생 정원의 증원인 것이다.
석·박사급 인력 양성을 제한하는 두 번째 요인은 반도체 분야의 교수가 적다는 점이다. 현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서 반도체 전공 교수는 13명이며 이들이 연구 지도를 하는 대학원 학생 수는 교수 1인당 평균 18.9명이다. 서울대 전체 대학원생을 교수 숫자로 나눠 보면 교수 1인당 평균 5.5명의 대학원생을 지도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도체 분야 교수가 담당하는 대학원생 수는 전체 평균의 세 배 이상 많으며 이는 반도체 교수가 지도할 수 있는 대학원생의 수가 한계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대학원생이 추가로 입학해도 반도체 분야로 수용하기 어려울 것이고 이를 해결하고 대학원생 인력 양성을 확대하기 위해 반도체 분야 교수의 충원이 시급함을 알 수 있다. 참고로 미국의 유명 주립대인 미시간대, 퍼듀대, 텍사스주립대의 반도체 전공 교수 숫자는 각각 20명, 23명, 18명으로 서울대보다 훨씬 많다. 교수의 충원은 학부 교육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학부생 정원이 늘어나면 이 학생들을 교육시킬 교수의 숫자도 함께 증가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학원에 입학할 학부 졸업생과 반도체 분야 교수의 숫자가 증가한다면 그다음 순서로 대학원 연구원들이 내실 있는 반도체 분야 연구를 할 수 있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실험 실습을 위한 연구비 등을 지원할 수 있도록 정부 사업의 증대가 필요하다. 이렇게 대학원 인력 양성을 위한 조건이 갖춰지고 마지막 순서로 대학원 입학 정원을 늘린다면 인력 양성이 실제로 증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정리하면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필요한 네 가지 중요한 요건은 학부 정원의 증가, 교수 숫자 증가, 정부 지원 연구비 증가, 그리고 대학원 정원 증가다. 이 모두가 이뤄질 때 실제적인 인력 양성의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 지원 연구비의 증가를 통해 석·박사급 인력 양성의 효과를 거둘 수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추가적인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학부 정원의 증가, 그리고 교수 숫자의 증가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외면하고 상대적으로 해결하기 용이한 낮은 순위의 지원들만 한다면 인력 양성의 효과가 제한적일 것이다. 새 정부가 과감하게 어려운 문제들을 우선적으로 해결해 인력 양성에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을 수립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