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오대산이 선재길이라는 둘레길을 만들었지요. 원래 그 길은 곤충이 지나다니는 곳이었습니다. 그 길을 8㎞나 파헤쳐 호모사피엔스가 다니는 길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곤충들은 사라지고 숲길은 생명 없는 침묵의 숲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생각할수록 가슴이 아픕니다.”
24일 경기도 양평군 덕수리 우리곤충연구소에서 만난 곤충학자 정부희(60) 박사는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려면 자연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인 것을 남겨 놓아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20년 이상 곤충만 연구해 ‘한국의 파브르’로도 불리는 정 박사는 30대 중반에 벌레의 세계에 입문한 늦깎이 학자다. 주 전공은 곤충분류학, 그중에서도 딱정벌레와 같은 버섯살이 곤충들이다. 세계적으로 이 분야를 특화해 연구한 이는 정 박사가 거의 유일하다.
정 박사의 곤충을 바라보는 시각은 일반인과 사뭇 다르다. 우선 그는 벌 등이 사람을 쏘는 것을 절대 ‘공격’이라고 하지 않는다. 대신 ‘실수’ 또는 ‘방어’라고 표현한다. 사람들에게 달려드는 것은 진로 변경을 잘못했거나 자신 또는 가족과 종족을 지키기 위해 나서는 행위라는 것이다. 미안함도 있다. 자신이 산속에 들어옴으로써 원래 주인인 곤충들을 내쫓았다는 자책감 때문이다. 정 박사는 “산속에 건물을 지을 때도 고민을 많이 했다”며 “밤에 관찰할 일이 많아 어쩔 수 없이 만들기는 했지만 이곳에 서식하는 반딧불이에게는 너무 미안했다”고 말했다.
그의 연구소 앞에는 900평 규모의 예사롭지 않은 정원이 있다. 흔히 정원 하면 사람들이 보고 즐기기 위해 만드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곳은 사람을 위한 곳이 아니다. 나무와 꽃·풀들 모두 곤충들을 먹이기 위해 키운다. ‘곤충 정원’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정 박사는 “이곳에 모이는 곤충들이 대략 300여 종 정도 될 것”이라며 “어떤 때는 강원도 깊은 산속에 사는 벌레들도 발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곤충 정원을 만든 데는 다른 뜻도 있다. 곤충을 연구하는 데 최적의 환경은 샘플이 많은 자연사박물관 수장고지만 우리나라는 연구하는 사람이 거의 없기에 표본도 많지 않다. 연구자가 적다는 것은 그만큼 연구용 샘플을 구하기 힘들다는 이야기도 된다. 결국 곤충을 채집하기 위해 직접 산으로, 들로 다녀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곳에서는 험하기 때문에 정밀 관찰을 하기 힘들다. 철제 호미 3개를 부러뜨리고 몸을 망쳐가면서 그만의 장소를 만든 이유다.
정 박사는 곤충 연구 환경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탄한다. 개발과 온난화 등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면서 곤충들을 찾기도 녹록지 않아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5월에 산을 가면 버섯살이 곤충들을 10마리 정도 찾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한 마리 보기도 힘들다고 한다. 그나마 제대로 보존돼 있는 곳이 강원도 오대산과 제주도 곶자왈 정도. 문제는 이곳 곤충들의 서식지도 인간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둘레길이나 올레길같이 인공적으로 만든 산책로가 대표적이다. 정 박사는 “사람은 길을 만들어도 몇 걸음만 걸으면 자유롭게 왔다 갔다 할 수 있지만 곤충들에게는 한강 같은 장애물이 생기는 것과 같다”며 “이렇게 되면 그들의 서식지는 파편화·조각화하고 결국 사라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해충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물었다. 그의 대답은 단호했다. “해충과 익충은 사람의 기준일 뿐입니다. 그렇게 구분하면 안되죠.” 실제로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은 말벌과 독나방 정도뿐이라고 한다. 나머지 곤충들은 사람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단지 징그럽다는 편견에, 또는 농작물을 먹는다는 생각에 적개심을 갖는다는 것이다. 그는 “징그럽다고 죽이지만 않아도, 농약을 뿌려 박멸하지만 않아도 많은 곤충들을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며 “사람이 마음과 의식만 바꾼다면 얼마든지 곤충과 공존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