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의 추진 과제로 질병관리청이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기구’ 신설을 추진한다. 질병청은 민간 전문가들의 의견이 방역 정책에 반영되지 않는다는 비판과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방역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윤 정부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이 자문기구에 대해 문재인 전 정부의 일상회복지원위원회와 차별점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질병청은 26일 전문가 역량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의사결정 구조와 절차를 개선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민간 전문가를 중심으로 독립적 운영 형태를 구축하고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해나가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기구가 윤석열 대통령이 언급한 대통령 직속 위원회가 될지는 결정되지 않았다. 질병청 관계자는 “독립성을 보장하는 위원회가 될 것이지만 대통령 직속 위원회로 둘 지는 좀 더 검토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서부터 대통령 직속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기구를 설치하겠다고 강조해왔다. 이러한 공약 사항은 ‘코로나19비상대응100일로드맵’에도 담겼다. 자문 기구를 통해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 가능한 감염병 대응 체계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안철수 당시 인수위원장은 “전문가 의견을 그대로 시행하지 않고 정무적 판단이나 국민 여론에 의해 결정하다보니 많은 사람 생명의 위협을 가져오는 판단을 하게 된 것”이라며 설립 배경을 설명했다.
다만 이러한 기구에 대해 일각에선 전임 정부와 차별점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질병청은 자문 기구의 역할에 대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정책 제언을 중대본에 보고하고 소관부처 검토·조율 후 중대본 회의에서 최종 심의·확정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청이 이날 브리핑에서 자문 기구의 역할을 설명하자 기자들은 “기존 방식과 차이점이 보이지 않는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가”라며 재차 질의했다. 자문 역할에 그친다면 기존 방식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 당국도 기존 방식과 큰 차이점을 두기엔 어렵다고 설명해왔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자문 기구의 성격에 대해 “자문 역할 이상으로 의사 결정을 하는 등의 기구는 세계에서 유사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고도 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이러한 지적에 구조가 달라진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기존 일상회복지원위원회는 정부부처에서도 참여를 하는 구조”라며 “위원회 산하의 경제·사회·문화 등의 분과를 두다 보니 깊이 있게 논의되지 못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이전 위원회보다 객관적 데이터를 근거로 전문가들의 합의와 일치된 의견을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에 제시할 수 있다는 점이 이전과 다른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질병청은 중대본에 권고한다는 점이 기존 방식과 다르지 않을 수 있으나 해당 기구의 권고를 국가인권위원회 수준으로 격상 시킬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의사결정 과정에 변화를 도모하기 위해 세계보건기구(WHO)의 위기대응위원회를 참고하고 있다”며 “논의 후 합의된 결과들을 정식화 된 권고문 형태로 WHO에 제시하고 있는데 이런 방향으로 운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방식으로 정식화된 권고가 제안이 되면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를 부처가 검토하듯 운영할 것”이라고 했다.
이 기구의 권고 사항에 대해선 중대본 차원에서 숙의를 거칠 예정이다. 중대본은 기구의 권고 사항을 받게 되면 수용할 경우 수용하는 이유를 수용하지 못한다면 수용하지 못하는 이유를 제시할 예정이다. 아울러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 기구의 회의는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 모두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전 부회장은 “새 기구에서 회의를 민간에서 열람할 수 있도록 운영하는 것은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