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으로 투병 중인 나신한씨는 열심히 일해 자수성가한 케이스로, 친구들 사이에서 건물주라는 별칭도 있고 슬하에 두 자녀도 바르게 장성하여, 그동안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부끄럽지 않게 해낸 것 같아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둘째는 안정된 직장에 다니고 있어 앞으로 염려가 크게 없었으나 첫째는 사업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중이라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여 첫째에게 좀 더 많은 재산을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 가장의 사망 이후 가족 간의 상속재산과 관련한 분쟁 뉴스를 종종 본 후, 본인의 가족은 예외일거라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걱정이 커지게 됐다.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나신한씨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동안 증여를 통해 본인의 손으로 직접 재산을 정리하는 것이 가족들이 화목을 유지할 수 있는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나신한씨는 실행에 앞서 물려줄 재산(상가건물 : 25억원, 예상되는 병원비를 제외한 금융재산 : 10억원)을 파악하고 가족회의를 열어 배우자(본인주택 소유, 향후 예상되는 연금으로 생활 가능)와 둘째(유류분 감안)에게 각각 금융재산 5억원씩 증여하고 첫째에게는 상가건물 전체를 증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둘째는 별 다른 이의 제기 없이 아버지의 뜻에 따르기로 했고 모든 증여 절차를 마친 나신한씨는 1년 후 세상을 떠나게 됐다. 과연 나신한씨의 결정은 재무적으로 옳은 선택이었을까?
나신한씨의 의사결정은 세금이라는 재무적 요소보다 가족간 분쟁 방지라는 비재무적 요소를 중점으로 한 의사결정이었다. 나신한씨의 의사결정을 금전적 가치를 측정하자면 ① 전액 사전 증여하였을 경우와 ② 증여하지 않고 모두 상속했을 경우와의 세액 차이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두 가지 결정의 세액 차이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표)
나신한씨의 의사결정에 따른 세액은 ①모두 증여해 재산을 정리할 경우 세액은 증여시에 증여세 8.7억원과 상속시에 상속세 약 1억원으로 합계 금액인 9.7억원이 된다. 한편, ② 증여하지 않고 모두 상속으로 물려줄 경우의 세액은 상속세만 약 7.4억원으로 계산된다. 각 경우의 세액 차이 2.3억원(= ① 9.7억 ? ② 7.4억)이 곧 “내 손으로 내가 정리한” 의사결정의 댓가이자 가족간의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 지불한 기회비용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차이가 발생하게 될까?
위 상황을 보면 상속 전에 모두 증여하여 재산을 정리할 경우 증여세를 납부해야 된다는 것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다. 하지만 나신한씨의 경우 상속 전에 모든 재산을 다 증여하여 상속한 재산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상속세(9700만원)를 납부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세법에서는 상속개시일 전 상속인에게 10년이내(상속인이 아닌 자의 경우[며느리, 사위, 손자녀등] :5년) 증여한 증여재산가액은 상속세과세가액에 가산하도록 되어 있다. 사망을 예상할 수 있는 단계에서 피상속인(여기서는 나신한씨)이 상속과 다름 없는 증여의 형태로 분할, 이전하여 고율인 누진세율에 의한 상속세 부담을 회피하려는 부당한 상속세 회피행위를 방지하기 위한 취지인 것이다. 풀어서 말하자면, 상속세는 유산총액에 대해 과세되고 증여세는 수증자별로 취득한 재산에 대해 과세되어 누진세율에 의한 세액차이가 발생하게 되는데 이런 차이 발생 부분을 방지하기 위한 세법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결국 절세를 위해서라면 10년이라는 기간이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며 상속이 임박한 상황에서는 효과적인 절세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상속공제항목 중 배우자 공제(30억 한도)를 언급할 수는 있으나 공제를 많이 받기 위해서는 그만큼 배우자가 실제 상속 받는 재산이 많아야 한다. 배우자 공제를 통해 당장의 상속세는 줄일 수 있지만 배우자의 재산이 언젠가 또 상속될 때를 생각한다면 근본적인 절세방법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상속공제는 상속받은 사람들이 상속받은 재산으로 피상속인의 사망 이후에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상속세를 줄여주는 역할을 하는 것에 그 법적 취지가 있다. 그러나 나신한씨의 경우에는 상속 전에 이미 모든 재산을 증여하여 상속재산이 없어 상속공제 금액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상속재산에 금융재산이 있을 경우 최대 2억원의 금융재산공제를 받을 수 있으나, 나신한씨는 이미 모두 증여하여 상속재산 자체가 없으므로 금융재산공제를 적용할 여지가 없다. 또 상속공제는 상속 재산에 적용되는 것이고 이미 증여하여 상속세 계산시 합산하는 증여재산가액에 대해서는 상속공제를 적용받을 수 없다. 나신한씨의 경우 상속세 계산시 공제 받을 수 있는 최대 금액이 6억원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10억원(=일괄공제 : 5억 + 배우자 공제 최저한 : 5억)의 상속공제도 일부 공제받을 수 없다.
상속세를 절세하려면 미리 증여해야 한다는 얘기는 증여시기 이후 상속개시일까지 최소한 10년 이상의 기간이 충분히 남아있다는 가정을 전제하고 있는 것이며, 상속이 임박한 상황에서의 증여는 재무적으로 오히려 독이 될 수도 있다. 증여를 하기 전에는 반드시 주위의 전문가와 상담을 선행하고 진행할 것을 추천한다.
/신한라이프 상속증여연구소 김정철 수석연구원
※신한라이프 상속증여연구소
신한라이프는 자산가 고객에게 상속과 증여에 대한 전문적 WM(Wealth Management)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지난해 8월 11일 ‘상속증여연구소’를 업계 최초로 오픈했다. 상속증여연구소는 기존 부유층은 물론, 최근 부동산과 주식 등의 자산 가치 상승으로 상속과 증여에 대해 관심을 가지는 고객까지 확대하여 전문적인 상속증여 콘텐츠를 연구개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