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요커의 아트레터] 가족이 본 '오빠 바스키아'

두 여동생이 기획한 바스키아展
미공개 작품 다수 최초로 선보여
'스타' 아닌 '인간 바스키아'에 주목

바스키아의 1982년작 ‘Untitled’는 일명 '블루리본' 시리즈다. 맨 오른쪽 노란색 작품 ‘Dry Cell'(1988)은 바스키아의 말년작 중 하나인데, 개인적으로 자신의 아버지에게 선물한 작품이기도 하다.

뉴욕을 이야기할 때 자동연상 되는 현대미술가 중 하나인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의 전시 ‘장 미셸 바스키아:킹 플레저(King Pleasure)’ 가 맨해튼 서쪽 첼시 갤러리 지구에 위치한 스타렛-레하이 빌딩에서 한창이다. 그간 바스키아 전시가 기업이나 미술관 등 기관을 통해 기획된 것과 달리, 이번 전시는 유년 시절을 같이 보낸 두 명의 여동생 리잔 바스키아(Lisane Basquiat)와 지닌 헤리복스(Jeanine Heriveaux)가 공동으로 기획했기에 의미가 독특하다. 타인이 아닌 가족의 관점이기에 ‘슈퍼스타 바스키아’가 아닌 ‘인간 바스키아’의 일생에 초점이 맞춰졌다. 이번 전시에는 그동안 대중에 한 번도 공개된 적 없고 책에서나 볼 수 있던 200여점의 페인팅, 드로잉이 선보여 주목을 끈다.


바스키아는 아이티 계 아버지와 푸에트리코 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머니인 마틸다 바스키아(Matilde Basquiat)가 어린 바스키아를 브루클린 뮤지엄의 주니어 멤버로 등록해줬기에 그는 언제든 다양한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었다. 바스키아가 8살에 교통사고로 꽤 오랜 시간을 입원해야 했는데, 그때 마틸다는 해부학 책을 건넸다고 한다. 바스키아는 병상에 누워있는 동안 해부학 이미지들을 따라 그리며 본격적으로 그림 그리기에 흥미를 느꼈다고 한다. 바스키아의 그림에 해부학과 관련된 이미지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바스키아의 걸작들이 대거 탄생한 57그레이트 존슨 가에 위치했던 바스키아의 스튜디오가 복원돼 전시장에서 만날 수 있다.

전시장 초입에 들어서면 바스키아와 인연있는 곳들이 뉴욕 지도에 표시돼 있다. 그가 살던 아파트, 졸업한 학교, 자주 가던 식당과 클럽 등을 기록해 놓았다. 바스키아와 앤디 워홀의 친밀한 관계를 증명하듯 워홀이 바스키아를 비롯한 그의 가족을 그린 초상화 시리즈가 걸려있어 흥미를 돋운다.


본격적인 전시는 바스키아의 걸작들이 대거 탄생한 1980년대 작품들과 그가 사망하기 직전까지 사용하던 스튜디오가 복원된 공간을 보여준다. 바스키아에게 1980년대는 그 어떤 때보다 중요하다. 20대 초반의 그는 1982년부터 뉴욕과 로스앤젤레스에서 개인전을 가졌고 1982년 독일 카셀도큐멘타에는 176명의 아티스트 중 가장 어린 나이로 참가해 대중적 인지도를 쌓았다.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1982년작 ‘블루리본’ 시리즈 다섯 점 ‘무제(Untitled)’가 전시돼 있다. 당시 바스키아는 캔버스를 살 여유가 없어 스튜디오 주변 나무 울타리와 공사장의 파이프 등을 잘라 자신만의 캔버스를 만들었다. 네모 반듯한 캔버스와는 다른 모습들이 이색적이다. ‘무제’ 다섯 점 옆에는 커다란 노란 캔버스 바탕에 고릴라 형상이 그려져 있는 작품 ‘Dry Cell'(1988)이 걸려있다. 그가 사망하던 해에 제작된, 생애 마지막 작품들 중 하나이다. 바스키아가 자신의 아버지에게 개인적으로 선물한 작품이다.



57그레이트 존슨 가 스튜디오를 복원한 공간에서는 바스키아가 입었던 트렌치 코트, 주황색 그림 ‘무제'(1984)를 비롯한 다수의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57 그레이트 존스 가에 있었던 그의 스튜디오를 복원한 공간이다. 바스키아는 27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마약의 일종인 헤로인 중독으로 사망했다.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그는 이 스튜디오에서 2000여 점의 페인팅과 1000여 점의 드로잉을 남겼다. 다작이었다. 그만큼 바스키아에게 절대적으로 의미있는 57 그레이트 존스 스튜디오는 다수의 작품들과 손때 묻은 스케치북, 옷, 레코드판, 책등과 함께 그 시절 그대로 완벽하게 복원됐다. 그가 자주 사용하던 오브제는 평소 그가 무슨 생각을 하며 작업했는지 상상의 여운을 남겨준다.


전시장 한편에서는 바스키아의 작업에 영향을 준 아프리카 예술품, 중국 도자기, 악기 등 컬렉션도 볼 수 있다. 그가 자주 타고 다니던 자전거는 바스키아가 뉴욕에서 택시를 타려 할 때 흑인이라는 이유로 승차거부를 당한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전시돼 있다.



가로 12m가 넘는 ‘Nu Nile'(1985)는 바스키아가 팔라디움 나이트 클럽을 위해 특별 제작한 작품이다.

전시장 막바지의 가로가 12m에 이르는 초대형 작품인 ‘Nu Nile’(1985)도 볼거리다. 1985년 팔라디움 나이트클럽을 위해서 제작된 커미션 작업이다. 이번 전시는 최근 필립스 뉴욕의 이브닝세일의 메인 작품으로 바스키아의 ‘무제(Devil)’(1982)이 출품되면서 더 관심을 모았다. 바스키아 작품의 빅 컬렉터 중 한 명인 일본 온라인 쇼핑몰 억만장자 유사쿠 마에자와(Yusaku Maezawa)가 지난 2016년 크리스티 뉴욕경매에서 5730만 달러에 구입했던 작품인데, 6년만에 추정가 7000만 달러에 내놓았다. 작품은 추정가를 가뿐히 넘기며 85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100억원에 낙찰됐다.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갖춘 바스키아의 작품을 다양하게 만나고, 화가의 속내까지 가늠해 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6월 30일까지 열린다. /뉴욕=엄태근 아트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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