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국 시장에서 올 들어 수십조 원의 자금이 빠져나간 것으로 나타났다. 신흥국들이 코로나19 팬데믹에 대응해 지출을 늘려 재정 사정이 나빠진 데다 물가는 오르는데 성장은 침체되는 스태그플레이션까지 겹치며 신흥국의 투자 매력도가 뚝 떨어진 탓이다.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들이 물가를 잡으려 기준금리를 잇따라 인상하는 것도 투자금이 신흥국을 등지는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28일(현지 시간) 신흥 시장 조사 기관 EPFR을 인용해 신흥국 뮤추얼펀드와 상장지수펀드(ETF) 시장에서 올 들어 이날까지 총 360억 달러(약 45조 2000억 원)가 유출됐다고 보도했다. 투자은행(IB) JP모건이 신흥국의 달러 표시 국채 등을 모아 집계하는 벤치마크지수인 EMBI는 올 들어 25일까지 수익률이 -15%를 기록했다. FT는 “(EMBI는) 1994년 이후 약 30년 만에 수익률이 가장 낮았다”고 전했다.
경제 펀더멘털이 흔들리는 것이 이 같은 신흥국 약세의 원인으로 분석된다. 신흥국들이 팬데믹으로 타격을 입은 자국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재정지출을 늘린 것이 경제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5월에 이어 6·7월 연속 ‘빅스텝(금리 0.5%포인트 인상)’을 예고하고 유럽도 금리 인상 대열에 합류한 점도 신흥국에는 불리하다. 국제금융협회(IIF)의 조너선 포춘 이코노미스트는 “(금리 인상으로) 선진국 국채 등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더욱 커졌다”고 분석했다. 데이비드 하우너 뱅크오브아메리카(BoA) 수석전략가도 “평상시 같으면 선진국이 금리를 높이는 것 자체가 (신흥국에)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신흥국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졌다는 점이 문제”라고 짚었다.
최대 신흥 시장인 중국 역시 ‘신흥국의 덫’에 빠진 모습이다. 중국이 코로나 19 신규 확진을 억제하겠다며 ‘경제 수도’ 상하이를 수개월간 봉쇄하는 등 이른바 ‘제로 코로나’를 고수한 것이 경제에 막대한 타격을 입혔다. 중국 정부는 경기를 되살리겠다며 전 세계 국가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금리를 낮추고 있지만 오히려 선진국과의 금리 격차를 스스로 벌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3·4월 두 달 동안 중국 채권과 주식시장에서 빠져나간 자금은 총 180억 달러에 달했다고 F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