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이 만난 사람] 정동욱 "한미 원전동맹시대, 대등한 파트너 되려면 SMR 독자개발 시급"

[서경이 만난 사람] 정동욱 한국원자력학회장
■ 대담=김현상 경제부 차장
수주 시너지 등 새 도약 기회지만 핵심기술 앞선 美에 종속 될수도
'차세대 원전' 육성 위해선 대형원전과 동일 적용받는 규제 풀어야
先발주로 업체들에 일감부터 제공…망가진 원전 생태계 복원 필요

정동욱 원자력학회장./권욱 기자

“윤석열 정부가 ‘탈원전 정책 폐기’와 함께 ‘원전 최강국 건설’을 약속한 다음 ‘한미 원전 동맹’까지 맺으면서 우리 원자력 업계는 다시 세계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미국과의 원전 동맹을 진짜 기회로 삼기 위해서는 자체 기술 개발을 통해 대등한 협력 관계로 올라설 수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우리보다 핵심 기술에서 앞선 미국에 자칫 종속될 수 있기 때문이죠. 탈원전 정책으로 지난 5년간 망가진 국내 원전 생태계를 복원하는 일도 시급합니다. 원전 업계의 숙원이던 신한울 3·4호기 공사 재개는 적법한 절차대로 진행하되 고사 직전에 놓인 원전 업체들을 되살리기 위해 일감을 선(先)발주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합니다.”


국내 원전 업계에 지난 5년은 마치 암흑기와도 같은 시간이었다.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던 한국 원전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가로막혀 뒷걸음질 쳤다. 그사이 국내 원전 생태계도 하나둘 망가지기 시작했다. 탈원전 백지화와 원전 최강국 건설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원전 업계에는 희망 섞인 기대감이 퍼져가고 있다. 하지만 25일 서울경제와 만난 정동욱(61·사진) 한국원자력학회장(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의 표정에서는 기대감 못지않게 긴장감도 함께 묻어났다. 그는 “새 정부가 원전 산업 육성을 약속한 만큼 이제는 학계와 업계 모두 실력으로 증명해야 할 때”라며 “그런 점에서 과거와 달리 탈원전 핑계도 댈 수 없는 지금이 가장 무서운 시점”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원전 생태계 복원을 위한 우선 과제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와 ‘고리 2호기 계속운전’ ‘건설 취소된 원전 6기의 재검토’ 등 세 가지를 꼽았다. 그는 “무엇보다 원전은 정부의 장기 과제로 추진돼야 기업들도 투자에 나설 수 있다”며 “신한울 3·4호 건설 재개, 고리 2호기 계속운전과 함께 올해 말 수립될 10차 전력수급계획에 앞서 취소됐던 6기의 원전 필요성을 재검토해 반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이 같은 추진 과제로 당장 고사 위기에 내몰린 원전 업계를 되살리기는 역부족이다. 지금도 수주 절벽으로 문을 닫는 업체가 속출하는 상황에서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위기의 국내 원전 산업을 살리기 위한 응급 처방으로 일감을 먼저 발주하는 ‘선발주 카드’를 제시했다. 공사가 중단된 원전을 다시 짓고 가동하기까지는 최소 수년의 시간이 더 소요되는 만큼 정부가 실제 착공에 앞서 먼저 발주에 나서면 원전 업계가 조금 더 일찍 일감을 받아 위기를 넘길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정부가 원전을 탄소 중립 달성의 중요한 수단 중 하나로 인식하고 원전 업계와의 확고한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일각에서는 환경영향평가 등을 생략해서라도 2025년으로 예정된 신한울 3·4호기 건설 재개 시점을 앞당겨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정 회장은 이러한 의견에 대해 단호히 반대 의견을 밝혔다. 정 회장은 “탈원전의 못을 박는 것은 쉽지만 그 못을 빼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 수밖에 없다”면서 “이전 정부가 탈원전을 밀어붙였던 것처럼 똑같이 법적 절차를 건너뛰고 원전 건설을 재개한다면 언제든 또다시 정치적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소 시간이 걸리더라도 전력수급계획과 에너지기본계획·환경영향평가 등 필요한 절차를 모두 밟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미정상회담의 성과 중 하나인 양국 간 원전 동맹은 국내 원전 업계에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다가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21일 한미정상회담 직후 공동성명에서 “원전은 탄소 제로 전력의 핵심적이고 신뢰할 만한 원천이자 우리의 청정에너지 경제를 성장시키기 위한 중요한 요소”라며 원전 동맹을 맺기로 했다. 한미 양국이 높은 수준의 원전 협력에 합의함에 따라 세계 원전 건설 시장을 주도할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다는 평가다. 세계원자력협회(WNA)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추진 중인 원전은 101기로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25%에 달한다. 미국 정부는 2030년 세계 원전 건설 시장 규모를 5000억~7400억 달러로 추산하고 있다.


정 회장은 “원전 수주전의 절반은 기술, 나머지 절반은 외교력에 달렸다”며 “기술력은 우리가 이미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을 통해 증명했고 미국은 세계적 영향력을 가진 국가인 만큼 원전 수출에 있어 양국 간 시너지 효과가 클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전 시장에서 퇴출당하면서 체코·폴란드 등 주요 원전 수주전에 나설 만한 국가가 한국과 미국·프랑스로 좁혀진 만큼 한미 원전 동맹은 독보적인 경쟁력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정 회장은 “체코와 폴란드 모두 늦어도 2024년 초에는 계약자 선정을 마무리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외교력을 최대한 발휘해야 할 때”라며 “필요하면 파이낸싱, 정보기술(IT) 산업과의 패키지 구성 등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동욱 원자력학회장./권욱 기자

다만 정 회장은 한미 원전 동맹에서 우리나라가 미국에 종속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와 미국 모두 고유의 원전 브랜드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한국이 미국의 하청기지 역할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다. 정 회장은 “원전 동맹이 대등한 협력 관계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 자체 독자 기술 개발을 통한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외교력도 뒷받침돼야 한다”며 “우리 원전 브랜드인 ‘APR1400’은 미국 브랜드인 ‘AP1000’과 견줘봐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기존 대형 원전과 달리 차세대 원전으로 떠오르는 ‘소형모듈원자로(SMR)’의 경우 우리가 미국에 뒤처지고 있다는 점이다. 정 회장은 “미국은 ‘뉴스케일파워’를 선두로 SMR 상업화를 목전에 두고 있는 만큼 굳이 우리나라와 적극적으로 협력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며 “우리가 대등한 협력 파트너가 되려면 최대한 빨리 고유의 SMR을 개발해야 개발도상국 등 앞으로의 SMR 수주전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물론 독자적인 SMR 개발을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숙제도 많다. 먼저 기존 대형 원전과 동일한 기준을 적용받는 규제를 푸는 일이다. 미국 역시 SMR 개발 과정에서 뉴스케일에 전례 없는 지원을 쏟아부었다. 미국 에너지부는 기존 대형 원전 건설의 모든 규제를 나열한 뒤 SMR에는 적용할 필요가 없는 것들을 모두 없앴다. 정 회장은 “고속도로에서도 승용차의 속도제한은 시속 100㎞이지만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트럭은 이보다 낮은 90㎞ 정도로 제한을 달리 두지 않느냐”며 “충분한 냉각 기능으로 비상 전원이 필요 없어 기존 대형 원전에 비해 안전성이 높은 SMR은 새로운 규제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세계적인 에너지 대란 속에 원전의 가치가 재평가받고 있지만 여전히 국내에서는 원전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적 불안감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정 회장은 지난 5년간 책임을 방기해온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이제라도 제 역할에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원전은 아무리 안전하더라도 후쿠시마와 체르노빌 사고의 경험으로 일반 대중에게 트라우마가 있는 게 사실”이라며 “원전을 안전하게 관리하는 일뿐 아니라 원전이 국민들에게 신뢰받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원안위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월성원전 삼중수소 누출 사태 당시에도 수많은 전문가가 안전에 문제가 없다는 의견을 내놓았지만 정작 원안위는 침묵했다”며 “안전 문제가 불거질 경우 원안위가 전면에 나서 현장도 찾아가고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하며 신뢰를 쌓아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원안위가 제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위원회 구성도 전면 재편할 필요가 있다는 게 정 회장의 생각이다. 그는 “원안위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은 위원회가 자초한 면이 크다”며 원안위의 전문성을 강화하기 위해 비상임위원 중심의 위원회 구조를 상임위원 중심으로 개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원안위는 상임위원 2명(위원장·사무처장)과 비상임위원 7명으로 구성돼 있다. 비상임위원들은 전문성이 떨어지는 데다 책임 있는 발언을 하기 어려운 만큼 상임위원 체제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현재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7명의 위원회 체제를 7명의 상임위원 체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게 그의 구상이다.


아울러 원자력 사업 관여자뿐 아니라 탈핵 활동가에 대한 제척 조항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안전 규제의 독립성에 원전 사업자뿐 아니라 원자력 이용을 반대하는 단체로부터의 독립도 명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이 같은 규정이 없어 원안위 비상임위원 중 과반인 4명이 이전 정부와 여당이 선임한 탈원전 성향의 인사들이다. 정 회장은 “원안위가 독립성을 갖추기 위해서는 위원들을 국회 청문 절차를 통해 검증하는 방안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며 “위원회 사무처에 개방직을 확대해 원전 전문가들이 보다 많이 원안위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He is…


△1961년 서울 △서울 성동고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미국 MIT 원자력공학 박사 △2007년 한국수력원자력 중앙연구원 수석연구원 △2010년 한국연구재단 원자력단장 △2012년 원자력안전재단 이사 △2012년 중앙대 에너지시스템공학부 교수 △2015년 국가과학기술심의회 에너지환경전문위원장 △2021년 한국원자력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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