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이 시행된 지 넉 달이 지났지만 경영계와 노동계의 온도 차이는 여전하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이 형사처벌법인만큼 명확하게 조항을 개정해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노동계는 경영계 요구대로 개정된다면 법 제정 취지를 훼손한다며 반대한다. 중대재해법 손질을 예고한 윤석열 정부는 현재 노사 의견을 수렴하는 단계다. 손질이 실제로 이뤄진다면 경영계의 요구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29일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최근 정부에 전달한 중대재해법 시행령 개정에 대한 경영계 건의서를 보면 개정 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시행령 2조인 직업성 질병자에 대한 조문을 명확히 해달라는 것이다. 경영계는 조문에 치료 기간과 질병의 정도인 중증도 기준을 넣자고 요구한다. 기업이 근로자의 경미한 질병으로도 중대재해법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를 낮추자는 게 개정의 목적이다.
특히 요구의 핵심은 기업으로 보면 대표이사인 경영책임자에 관한 부분이다. 경영책임자가 누구인지는 중대재해법 제정 전부터 경영계의 가장 큰 관심사항이다. 법리상 경영책임자가 형사처벌 대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대재해법의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는 경영책임자뿐만 아니라 이에 준한 안전보건업무 담당자까지 처벌 대상으로 넓게 해석한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 시행령에 경영책임자과 안전보건업무 담당자의 책임 소재를 명확하게 나눠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영계는 경영책임자의 의무(시행령 제4조)도 사실상 완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제4조는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과 이행 조치를 정한다. 대표적으로 경영책임자는 안전 조직을 전문인력 3명 이상으로 둬야 한다. 또 재해 예방을 위해 예산을 편성하고 집행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의무를 정하는 조문 일부가 모호하게 해석될 부분이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업무를 ‘충실히’나 업무수행에 ‘필요한’으로 설명하고 있다. 조문에 대한 사법기관의 해석이 자의적일 수 있고, 해석에 따라서는 경영자가 무한대의 책임을 질 수도 있다. 경영계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형법인만큼 경영책임자의 의무 내용이 범죄 구성요건이 되는 격”이라며 “조문이 모호하면 수사기관의 수사권 남용이 우려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경영계의 바람대로 시행령이 고쳐질지는 현재로선 미지수다. 우선 본법 개정은 여소야대 상황을 고려할 때 가능성이 낮다. 중대재해법이 다수당인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제정됐기 때문이다. 물론 시행령 개정은 정부가 할 수 있지만 6곳에 달하는 중대재해법의 관계 부처의 의견 조율을 거쳐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어려움은 노동계가 중대재해법 개정에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계는 첫 중대재해법 재판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개정 논의가 너무 이르다는 입장이다. 노동계 한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은 그동안 제대로 된 처벌이 이뤄지지 않은 사망산재사고 처벌 체계를 바로잡는 데 목적이 있다”고 개정에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에 대한 노사 의견을 다양한 경로로 듣고 있다”며 “시행령 개정은 고용부에 위임된 범위 내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