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년만의 '5%대 물가' 경고에도 '역대 최대' 추경…내달 풀릴 현금만 26조+α

■62조로 불어난 추경…물가상승 압력 가중
소상공인 손실보상 매출 기준 30억서 50억으로 상향
특고·프리랜서·전세버스 기사 지원금 100만원씩 늘려
"여야 선심성 돈풀기 초점…물가상승세 더 가팔라질 것"

박병석 국회의장이 29일 국회에서 여야정 추경안 협의 전 참석자들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추경호(왼쪽부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박 의장,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국회사진기자단


6?1 지방선거를 사흘 앞둔 29일 여야가 역대 최대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안을 확정 지으면서 늘어나는 정부 지출만큼 물가 상승 압력은 한층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 여야가 추경 규모를 정부안보다 더 늘려 잡으면서 당장 다음 달 시중에 풀릴 현금만 26조 원을 웃돌 것으로 추산되기 때문이다. 이달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5% 돌파가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수십조 원 규모의 현금이 일시에 풀리면 물가 상승세는 보다 가팔라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 추경안에 담긴 각종 대출 지원과 23조 원 규모의 지방교부금도 줄줄이 시장에 풀리는 만큼 하반기까지 추경 여파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물가를 잡기 위한 당국의 정책 수단이 바닥난 상황에서 정치권발 추가 악재마저 겹친 셈이다. 물가 당국의 한 관계자는 “치솟는 물가를 잡을 방도가 마땅치 않아 마른 수건을 쥐어짜고 있다”면서 “소상공인 지원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지만 시장에 한꺼번에 풀릴 현금이 물가에 어떤 영향을 줄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이날 국회에서 합의된 추경안을 보면 여야는 정부가 마련한 주요 현금 지급 사업의 규모를 앞다퉈 불리는 데 초점을 맞췄다. 정부는 앞서 소상공인 손실보전금 지급 대상 매출액 기준을 30억 원 이하로 잡았지만 여야는 이를 다시 50억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여야는 또 특별고용·프리랜서·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금은 당초 정부안 대비 100만 원 늘어난 200만 원을 지급하기로 합의했다. 아울러 법인택시와 전세버스 기사에 대한 지원금도 200만 원에서 300만 원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이들 사업의 전체 규모는 26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추산된다.


현금성 사업비는 추경안이 통과되는 즉시 지급될 예정이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29일 본회의에서 추경안을 처리하면 30일 오후부터 손실보전금이 바로 지급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역대 최대 규모의 추경이 몰고 올 후폭풍이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 따른 글로벌 공급난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까지 겹치면서 물가는 품목을 가리지 않고 고공 행진 중이다. 설상가상으로 추경이 집행되면서 수십조 원의 현금이 시장에 쏟아지면 천정부지로 치솟는 물가를 더욱 자극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이유로 전문가들은 손실보전금의 분할 지급이 필요하다고 조언했지만 결국 일괄 지급으로 결정 나면서 정치권이 추가 물가 상승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책 연구원의 한 관계자는 “취약 계층 지원을 위해 추경이 불가피한 점을 고려하더라도 부작용을 최소화할 방법을 마련해야 했다”면서 “현금 지급 시점을 분기별로 나누는 식으로 추경 사업이 설계됐다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4월 소비자물가지수는 전년 동월 대비 4.8%나 뛰어오르며 2008년 10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고 이달 물가 상승률은 5%를 웃돌 것이 확실시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번 추경으로 물가 상승률이 0.16%포인트 이상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시중에 일시에 풀린 돈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자극해 또다시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이달 기대 인플레이션율은 3.3%로 9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기대 인플레이션율이 오르면 노동자가 고용주에게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고용주는 임금 인상분을 제품과 서비스 가격에 반영해 다시 물가 상승을 초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김지연 KDI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균형 실업률을 통상 3% 중후반 수준으로 보는데 1분기 실업률은 3.0%를 기록했다”면서 “상대적으로 구직자에게 유리한 시장이 형성됐다는 징표로 앞으로 임금 상승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여야는 이날 현금성 지급 사업 외에 금융 지원 사업 규모도 함께 늘리기로 합의했다. 소상공인 신규 대출액 특례 보증 공급 규모는 당초 3조 원에서 4조 2000억 원으로 증액됐다. 대환대출 지원은 8조 7000억 원으로 정부안(7조 7000억 원)보다 1조 원가량 늘어났다. 부실채권 조정을 위한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출자도 4000억 원 추가됐다.


여야는 △어업인 유가연동보조금(200억 원) △지역사랑상품권 추가 발행(1000억 원) △코로나 방역(1조 1000억 원) △산불 대응(130억 원) 등의 예산도 추경안에 함께 반영했다. 이번 추경에서 감액 조정된 지역 간 균형 발전을 위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과 관련해서는 당초 계획된 사업 제안서에 따른 조속한 완공을 위해 적정 규모의 예산을 반영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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