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이 굵고 강렬한 작품을 선보였던 박찬욱 감독이 미묘하고 섬세한 수사 멜로극으로 돌아왔다. 국내 개봉 전부터 칸 국제영화제에서 주목한 영화 '헤어질 결심'이 국내에서는 어떤 평을 받을지 관심이 쏠린다.

2일 오전 서울 종로구 JW 메리어트 동대문 스퀘어 서울에서 '헤어질 결심' 제작보고회가 개최됐다. 박찬욱 감독과 배우 탕웨이, 박해일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헤어질 결심'은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을 수사하게 된 형사 해준(박해일)이 사망자의 아내 서래(탕웨이)를 만나고 의심과 관심을 동시에 느끼며 시작되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려는 수사 과정의 팽팽한 긴장감과 서로에게 특별한 호기심과 의외의 동질감을 느끼는 두 인물의 감정선이 재미를 선사한다.

작품은 박찬욱 감독이 영화 '아가씨' 이후 6년 만에 선보이는 한국 영화다. 박 감독은 '헤어질 결심'으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 부문 공식 초청에 이어 감독상을 수상했다. 한국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는 것은 '취화선'(2002) 임권택 감독 이후 두 번째다. 아울러 박 감독은 '올드보이'(2004)와 '박쥐'(2009)로 심사위원상을 받은 바 있어, 이번 수상으로 한국 영화인 최다 칸 국제영화제 수상 기록을 세우게 됐다.

박 감독은 "3~4년 전에 고등학생 때 읽었던 스웨덴 소설을 다시 읽게 되면서 속이 깊고 상대방을 배려해 주는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고 작품의 출발점을 이야기했다. 그는 "나와 '친절한 금자씨' 이후로 함께 해오고 있는 정서경 작가와 작품을 하자고 이야기하다가 '주인공을 박해일로 생각해보자'고 했다"며 "원래 난 실제로 캐스팅이 되지 않을 수도 있으니까 특정 배우를 염두에 두고 시나리오를 쓰진 않는다. 이번에도 박해일이 꼭 캐스팅할 거라는 생각이 아니었지만 그렇게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봉조 작곡의 한국 가요 '안개'를 이야기하다가 작품에 안개가 나오면 로맨스 영화여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형사가 나오는 로맨스 영화가 완성됐다"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이 특별한 것은 수사 멜로극이라는 것이다. 박 감독의 전작의 결과는 다른 점이 많다. 박 감독은 "각본가와 함께 세운 원칙이 '절대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게 하자'는 것"이라며 "칸에서 많은 인터뷰를 하던 중에 누군가 '이 영화는 50% 수사극, 50%의 멜로극이라고 표현해도 되냐'고 하더라. 나는 '그보다는 100%의 수사극, 100%의 멜로극이라고 하면 좋겠다'고 했다. 말장난이 아니라 분리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탐문해서 조사를 하고, 심문하는 것, 미행하고 잠복근무하면서 들여다보는 것 등이 모두 형사의 임무인데 이 영화에서는 멜로다. 유혹과 거부, 밀당하는 것, 원망과 변명 등이 심문 과정에서 이뤄지는 것이 이 영화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강조했다.

탕웨이가 연기한 서래는 산에서 벌어진 변사 사건 사망자의 아내로, 남편의 사망 사건을 담당하는 예의 바르고 청결한 형사 해준을 마주하고 자신이 사건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중국인이지만 외할아버지가 한국인 독립운동가인 서래는 서툰 한국어이지만 분명하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며 해준을 대한다.

박해일은 "탕웨이가 곧 서래였다. 그만큼 상대역이자 배우로 봤을 때 굉장히 잘 어울렸다"고 대신 캐릭터를 설명했다. 그는 "탕웨이가 걸어온 작품을 모두 잘 챙겨 본 건 아니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색계'와 국내 영화 '만추'를 봤기 때문에, 탕웨이의 매력은 내면의 단단함이라고 느꼈다.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표정과 눈빛이 이번 작품에서 더 확장됐다"며 궁금증을 높였다.

'헤어질 결심'이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 이후 11년 만에 출연하는 한국 영화인 탕웨이는 "박 감독님에게 처음 이야기를 들었을 때 1시간 반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며 "난 계속 물을 마셨고 흥분됐던 기억이 난다. 완전히 감독님의 이야기 속에 진입할 수 있었고 그때 감독님과 작가님의 눈빛이 따뜻하다는 느낌이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내가 외국어로 연기해야 하지만 이미 안심이 되고 걱정이 없었다. 난 박 감독님의 스타일을 굉장히 좋아해서 함께 하는 것이 영광이었다"며 "배우들을 걱정하게 하지 않는 감독님이다. 그래서 난 배우로서 해야 할 일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고 감사 인사를 전했다.

박해일이 맡은 해준 역은 항상 본분에 충실한 유능한 형사다. 불면증으로 인해 밤샘 잠복 수사가 일상이고, 사건 현장에서의 모든 기록을 스마트 워치에 녹음으로 남기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해준이 태연하게 남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서래에게 강한 호기심을 갖게 된다.

박해일은 "많은 남자 배우들이 형사 역을 하는데 내가 왜 그동안 형사 역을 하지 않았나 생각해봤다"며 "장르물에서의 형사 역은 내가 잘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번 캐릭터는 왠지 나에게 잘 맞는 옷이라고 생각했다"고 캐릭터의 차별성을 강조했다. 그는 "그만큼 남다른 측면이 있다. 주변에 꼭 그런 형사들이 있을 것"이라며 "친절하고 청결하면서 효율성을 중시해서 주머니 안에 많은 것을 가지고 다니는 것들이다. 열심히 사는 직업군이다"라고 설명했다.

박해일과 박 감독의 작업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해일은 "2000년도 초 'JSA 공동경비구역' 연출하실 때 감독님을 알고 있었다. 난 감독님이 한국 영화계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을 바라본 후배 입장이었는데, 나에게도 마침내 기회가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화적 색깔과 결과들이 대단하시지만, 개인적으로 '나라는 배우가 감독님의 영화에 잘 맞을 수 있을까?'라고 궁금해졌다. 처음 제안하실 때 이야기를 30분 정도 설명해 주시는데 가장 호기심이 있었던 건 형사 캐릭터였고, 주변에서 '멜로 장르를 언제쯤 다시 하냐'고 해서 이 영화가 수사극 안에서의 멜로를 보여준다고 하니 정말 궁금해졌다"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까 그 전에 감독님이 해온 작품과 결이 변화된 것이 느껴졌다. 담백한 톤이 느껴지고 내가 좀 더 뛰어 들어갈 수 있는 부분들에 호기심이 커졌다"고 말했다.

한국 작품이지만 한국어가 서툰 외국인 배우가 나오는 것도 이유가 있다. 언어적 장벽을 이용한 것. 박 감독은 "탕웨이가 연기하는 한국어는 아주 훌륭하다. 문장도 완벽하고, 특히 문자를 보낼 때 맞춤법 띄어쓰기가 완벽하다"면서도 "아무래도 억양과 발음이 우리와 조금 다르다. 한국어 관객들이 잘 아는 한국어인데 좀 낯설고 어딘가 좀 묘하다는 인상을 받기를 원했다"고 밝혔다.

이어 "해준의 대사를 빌리자면 너무 정확해서 놀랐을 정도로 정확한 한국어인데, 독특하면서 신선하고 고상하고 우아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극 드라마로 배운 고풍스러운 표현들이 있어서 매력이 있다"며 "관객들은 귀엽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우리가 늘 생각한 단어를 하나 뚝 떼어 들으면 이상하게 들릴 때도 있지 않나. 그렇게 귀를 기울여서 낯선 한국어를 들으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켜보면 좋을 것 같다"고 관전 포인트를 꼽았다. 아울러 "'우리'와 '타자'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헤어질 결심'은 한국 개봉 전부터 칸 국제영화제에서 감독상이라는 큰 수확을 얻고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하지만 박 감독은 수상의 기쁨에 취하기 보다 국내 관객들의 평에 집중하고 있다. 박 감독은 "전작보다 좀 더 한국인만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내 생각에는 탕웨이의 한국어 대사가 특별하다"며 "한국 개봉이 가장 긴장된다"고 말했다.

탕웨이는 "난 작품 완성 후 3번을 봤다. 2번은 작은 화면으로 보고 1번은 큰 스크린을 봤는데 정말 달랐다"며 "이 영화는 꼭 영화관에서 봐야지 작품의 묘미를 알 수 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모습으로 보여준 세 명의 표현 방식을 봐달라"고 말했다.

박 감독은 "사운드와 이미지 양쪽 면에서 정말 공을 많이 들였다"며 "(코로나로 인해) 개봉을 못하고 있어서 후반 작업을 많이 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내 작품 중에서 완성도가 가장 높은 영화가 됐다"고 영화관에서의 관람을 독려했다. 오는 6월 29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