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카시오페아' 무대 옮긴 서현진의 묵직한 성장

영화 '카시오페아' 서현진 / 사진=트리플픽쳐스 제공

배우 서현진에게 '카시오페아'는 도전이자 새로움이었다. 드라마에서 사랑받아온 그가 영화에 출연했다는 것 자체가 도전이었고, 알츠하이머 환우 역할은 더욱 어려운 도전이었다. 모든 게 새롭게 다가왔다는 서현진은 일련의 과정을 겪으며 한층 깊어진 연기로 성장했다.


'카시오페아'는 변호사, 엄마, 딸로 완벽한 삶을 살아가려고 노력했던 수진(서현진)이 알츠하이머로 기억을 잃어가며 아빠 인우(안성기)와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특별한 동행을 담는다. 잘나가던 변호사 수진은 어느 날 갑자기 초로기 치매(노년기 이전 발생하는 치매) 판정을 받고 절망에 빠진다. 딸 지나(주예림)는 미리 남편이 있는 미국에 보내 그나마 다행이다. 수진이 의지할 사람은 오래 떨어져 살았던 아빠 인우뿐. 인우 역시 지극정성으로 딸을 돌보기 시작한다.


알츠하이머를 앓던 외할머니를 떠나보낸 서현진은 '카시오페아'의 시나리오를 받고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회상했다. 공감 가는 지점이 많았기에 시나리오를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었다. 또 알츠하이머 환우 역을 드라마보다 영화를 통해 연기한다면, 더 현실적이고 밀도 있게 표현할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 작품의 규모와 상관없이 출연을 결심하게 됐다.


"저는 주로 드라마를 통해 시청자와 만났어요. 제가 만약 영화를 한다면 드라마에서 보여드리지 않았던 표현을 보여드리고 싶었죠. 제 연기를 더 확장할 수 있고, 깊이감 있게 표현할 수 있다면 영화의 규모는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왔어요. 그러던 중 '카시오페아' 시나리오를 받은 거예요. 시나리오와 표현도 좋았는데, '내가 언제 안성기 선생님과 부녀 호흡을 맞춰보겠어?'라는 생각이 크게 들더라고요. 또 신 감독님이 직접 각본을 쓰셨다는 것도 매력적이었어요. 모든 감독님이 각본을 쓰는 게 아니잖아요. 1차 창작자와 일할 수 있는 건 행운이죠."


영화 촬영 현장은 서현진에게 새로움이었다. 촬영에 앞서 "얼마나 다를까?" 궁금했던 서현진은 표현의 폭을 넓혀 주는 현장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드라마였다면 나갈 수 없는 장면들과 표현들도 영화였기에 가능했다고.


"드라마는 각도의 제한 등이 있어요. 그런데 영화 현장은 제가 원하는 동선을 물어보고 거기에 맞춰서 카메라 무빙을 해주더라고요. 표현의 폭을 넓힐 수 있었어요. 드라마라면 너무 진한 표현, 예를 들어 갑자기 소변을 보는 장면이나 아빠에게 소리치는 장면, 또 자해하는 장면은 나갈 수 없잖아요. 영화에서만 다룰 수 있는 장면을 연기하는 게 새로웠어요."(웃음)



영화 '카시오페아' 스틸 / 사진=트리플픽쳐스

촬영 당시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직접 요양원에 방문해 환우들을 만나지 못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었다. 서현진은 대신 제작사와 신 감독이 제공한 영상 자료를 살펴보면서 흐름을 잡아 나갔다. 또 외할머니에게서 봤던 알츠하이머 환우들의 증세를 기억하며 몸의 행동과 패턴을 만들기도 했다.


"개인적인 경험과 자료를 토대로 알츠하이머 환우 캐릭터를 준비했는데, 가까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 되더라고요. 최대한 병세가 짙어질수록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려고 했죠. 한 부분이라도 '어?' 싶으면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이 깨질 것 같아서 더욱 주의를 기울였어요. 감독님과 전체적인 신 정리를 하는 게 우선이었습니다. 이후 병세가 심해지는 부분을 신 별로 나눠서 진행했죠. 물론 병세의 흐름대로 찍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렇지 못했어요. 이틀 차에 100신 이후를 찍었으니까요. 그래도 이미 정리해 놓은 부분이 있어서 무사히 촬영을 마쳤습니다."


서현진은 자칫 신파로 보일 수 있는 부분이 가장 걱정되는 지점이었다고 털어놨다. 소재의 특성상 관객들이 선입견을 가질 수 있다는 부분을 염두에 두고 최대한 건조하게 촬영하려고 했지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나와 애를 먹었다.


"울지 않기로 했던 신에서도 제가 계속 울었어요. 사실 전 수진이 울지 않으면서 관객들이 울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울지 않은 버전으로도 여러 컷 찍었는데, 감독님이 '그냥 솔직하게 나오는 감정대로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해주셨죠. '카시오페아'는 알츠하이머 환우를 다루고 있지만, 이건 기본 토대에 불과해요. 사실은 가족 간의 유대를 다룬 영화인데, 관객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길 바라요."


수진의 병세가 짙어질수록 그의 마음과 생각은 자연스럽게 작품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서현진은 수진이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하고, 둔화돼 가는 과정이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지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결국 알츠하이머가 자기 안에 갇히는 병이라는 걸 느꼈다고.


"계속 내 안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목소리가 작아지고 표현은 짧아져요. 중반부 이후부터는 수진이 대사가 거의 없을 정도로요. 대부분 호흡과 신음 소리만 있어요. 오히려 연기하기 까다롭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은 좀 더 보여줬어야 됐나?'는 고민도 했어요. 어쨌든 작품은 수진의 병세에 집중하기 보다 가족 이야기니까 드러나지 않는 게 맞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배우 안성기와의 호흡은 서현진 연기 인생에 있어 특별한 경험이었다. 워낙 대선배라 처음에는 다가가기 어려웠지만, 아버지와 비슷한 나이인 걸 알고부터는 더 편하게 대하려고 노력했다. 안성기도 그런 서현진의 마음을 알았는지, 따뜻하게 받아줬고 이는 편안한 호흡으로 이어졌다.


"어느 정도 병세가 진행된 수진이 차 안에서 인우의 말을 따라 하는 장면이 있어요. 촬영하기 전에 어떻게 앉아야 될지, 어떤 목소리로 해야 될지 전혀 감이 안 잡힌 상태였죠. 너무 어린아이처럼 하기도 그렇고, 그냥 수진이 목소리로 할 수 없었으니까요. 촬영에 들어가서 선생님을 봤는데, 안성기인지 인우인지 모르겠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냥 역할에 녹아들어서 연기했는데, 제가 생각한 것과 완전히 다른 목소리가 나와서 놀랐어요."(웃음)


서현진은 작품을 촬영하면서 가족에 대해, 특히 아버지의 소중함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됐다. 영화를 찍을 당시 부모와 자식 관계에 대해 생각이 많았던 터라 더 와닿았다. 그는 애증의 관계면서 가장 많이 싸우고, 또 아무렇지 않게 풀리는 사이. 민낯을 드러내는 사이라고 결론 내렸다.


"부모님에게 섭섭한 시기였어요. '부모인데 왜 내 편을 안 들어주지?' 싶은 마음에 많이 싸웠죠. 최근 아버지가 동생한데 '우리 집에서 난 왕따 같다'는 말을 했더라고요. 제 또래 다수의 아버지들이 그렇게 느끼죠. 보통 어머니만 육아를 하던 시대였잖아요. 한 번은 아버지가 허공에 대고 말을 하길래, 동생이 뒤에서 안았다고 해요. 그 얘기를 듣고 많이 울었어요. 아버지가 외로워서 혼잣말을 했나 봐요. 많이 보고 싶어요."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에 오래 붙어 있다는 서현진. 다행히 '카시오페아'는 외부적인 환경 때문에 캐릭터에서 금방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안도했다. 영화 촬영 기간이 짧은 편이라 수진으로 오랜 시간 있지 않아도 됐고, 크랭크업 후 드라마 '왜 오수재인가'로 넘어가는 타이밍이 짧아서 억지로 빠져나와야 했다.


"캐릭터에서 빠져나오긴 했는데, 한동안은 집에서 극중 딸과 했던 리코더 합주를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그렇게 좋았나 봐요. 예림이가 멜로디 라인을 녹음해서 보내준 게 있는데 한 달 동안 불고 있었어요. 보통은 작품이 끝나면 집 안에만 있고, 잘 못 나와요. 제가 취미가 없고, 그냥 좋아하는 걸 직업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에요. 어쩔 대는 동생이 억지로 방 밖으로 끌고 나오기도 해요."


"앞으로는 건강도 챙기고 컨디션도 올리면서 연기를 하려고 해요. 원래는 쉬면서 연기를 하려고 했는데, 오래 쉬면 현장감이 떨어질 것 같아서 그동안 달려왔어요. 항상 지금보다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그걸 원동력 삼은 거죠. 최근에는 너무 안 쉬어서 반 년 정도 쉬어볼까 생각 중이에요."(웃음)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