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만명 열광했지만…이건희컬렉션 작품 관리엔 '빈틈'

과제 남긴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
국립현대미술관 11개월 대장정
연장 거듭하며 '작품 훼손' 우려
진위논란, 작품연구 부족 도마 위
'미술열기' 이을 체계적 관리 절실

11개월의 대장정을 끝내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막바지이던 지난 5일 관람객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몰려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조상인기자

“10시에 미술관 관람이 시작되니까 1시간 일찍 와서 줄 서면 될 줄 알았는데, 미술관 입장해 표 끊는 데만 2시간 걸렸어요. 입장권 들고 전시장으로 들어오기까지 또 2시간을 기다렸습니다.”(서울 강서구 거주 60대 박명순 씨)


고 이건희(1942~2020) 삼성 회장의 유족이 기증한 ‘이건희 컬렉션’의 대표작 58점을 선보인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한국미술명작’전이 지난해 7월부터 지난 6일까지 11개월 동안 약 25만 명의 관람객을 끌어모았다.


7일 국립현대미술관(이하 국현)에 따르면 이 전시에 총 24만 8704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단일 전시 방문객 수로는 2016년 이중섭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국현 덕수궁관에서 열린 ‘백 년의 신화’가 4개월간 25만 명 관객을 동원한 것과 맞먹는다. 국현 측 관계자는 “거리두기 제한이 풀린 4월 중순 이후 54일간 14만 명이 관람, 일 평균 2600명이 다녀갔다”면서 “마지막 주말에는 하루 최대 3500여 명이 관람하는 등, 평균 4시간씩 기다려 전시를 보는 열기가 이어졌다”고 전했다. ‘컬렉터 이건희’의 파급력이 ‘화가 이중섭’의 인기를 압도했다는 뜻이다. 이건희 회장 타계 후, 삼성가(家) 유족은 지난해 4월 고인의 수집 문화재와 미술품 총 2만1693점을 국립중앙박물관과 국공립미술관 등 사회로 환원했다. 이 중 국현에는 1488점이 기증됐고 미술관은 수증 3개월 만에 이번 특별전을 마련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지난 6일까지 열린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줄을 서 있다. 코로나19 방역을 위한 거리두기 제한이 풀린 이후 주말 평균 대기 관람시간은 4시간에 달했다. /조상인기자

전시는 미술관람에 대한 대중적 수요를 확인한 반면 기증 미술품 관리와 활용에 대한 여러 과제를 남겼다. 애초 지난 3월13일까지로 예정한 전시를 두 차례나 연장해 6월까지 개최한 것을 두고 다수의 미술 전문가들은 “상설전시관도 아닌 곳에서 연장을 거듭해 1년 가까이 전시를 이어갔다는 것은 활발한 기획전을 열어야 할 국립미술관의 책임 방기”라고 지적하며 “기증받은 작품에 대한 체계적 연구도 전제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보여주자’ 식의 전시에 적잖이 실망했다”고 말했다. 미술관의 역할은 전시 뿐만 아니라 소장품의 연구 및 관람객 교육도 포함하는데, 국립미술관이 전시를 선도하기는커녕 대중 입맛에 따라가기 급급했다는 취지의 분석이다.


전시 기간에 화가 이인성의 작품으로 기증된 ‘다알리아’의 하단에 ‘son’ 혹은 ‘Rason’으로 보이는 의문의 서명이 발견돼 진위논란까지 불거졌다. 미술사 연구자 황정수 평론가는 “명망있는 컬렉터의 수집품이라는 이유로 ‘모든 기증품=한국미술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호도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미술관 학예사들조차 ‘이건희’라는 명성에 눌려 작품에 대한 냉정한 연구를 망설이는 것 같아 우려된다”고 말했다. 근대미술 전문가들은 이인성 외에 이중섭·이쾌대 등의 작품에 대한 심도있는 연구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작품 보존 상태를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전시기간 연장도 도마에 올랐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을 지낸 정준모 평론가는 “청전 이상범이나 백남순 등 장기간 노출로 훼손 우려가 있는 작품을 교체 한 번 없이 11개월이나 전시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 평론가는 “값어치를 초월해 역사적 가치를 중시한 이건희 컬렉션의 미술사적 맥락을 밝히고, 어떤 부족한 부분을 채울지 고민하는 것이 기증받은 미술관의 책무다. 구경거리, 볼거리만 내놓아서는 안 된다”면서 “기증작품 성격에 대한 파악이 부족한 채 성급하게 전시를 개최한 것이나 전임 (황희) 장관의 공감대 없는 ‘이건희 기념관’ 신축 계획 등은 공적인 자리에서 수행한 성과를 사적인 업적으로 포장하려 한 국민 기만 행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11개월의 대장정을 끝내는 '이건희 컬렉션 특별전'이 막바지이던 지난 5일 관람객들이 국립현대미술관에 몰려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조상인기자

‘이건희 컬렉션’ 운용에 대해 우정아 포스텍 교수는 “컬렉션의 가치가 바로 지금 눈앞의 정치적 이해, 경제적 성과에 좌지우지되어 흩어져서는 안된다”면서 “오늘날 우리가 메디치 가문을 정치 성과보다 예술적 기여로 기억하듯 훗날 이건희 회장은 ‘갤럭시’가 아니라 ‘컬렉션’으로 기억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번 전시로 확인한 이건희 컬렉션에 대한 관심을 국민과 공감하는 기획과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전시로 이어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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