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교통안전, 규칙 그리고 국민성

권성우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한국협상학회 회장)






거리에서 운전을 하다 보면 끼어들기, 꼬리 물기 등 난폭 운전을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한국인의 국민성이 나쁜 줄 알았다.


필자가 유학 생활을 한 미국의 피츠버그에서는 운전자들이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반면 뉴욕을 가 봤더니 뉴욕의 택시 운전자들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난폭하게 운전을 했다. 그러고 보니 국민성 차이가 아니라 인구밀도 차이였다. 피츠버그에서는 내가 양보를 하더라도 크게 손해를 보지 않기 때문에 여유로울 수 있지만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그럴 마음의 여유가 없는 것이다.


뉴욕과 피츠버그에는 공통점이 있다. ‘정지’ 신호 시스템이다. 신호등이 필요 없는 작은 사거리나 신호등이 고장 났을 때 사용되는 규칙이다. 미국에서 가장 인상 깊은 것을 꼽으라면 바로 이 ‘정지’ 시스템이다. 우리나라에도 ‘정지’ 신호가 있는데 ‘그렇게 간단한 걸 왜?’라고 의문스러워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렇게 간단한 시스템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사거리에서 정지 신호가 있으면 차들이 속도를 줄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정지하지 않고 슬금슬금 가면서 눈치를 보는 것이 대부분이다. 우리는 이것이 안전하면서도 시간을 절약하는 더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한국에서 몇 년의 운전 경력이 있었지만 미국에서는 운전면허 실기 시험에서 떨어졌다. ‘정지’ 신호를 지키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분명히 완전히 정지를 하고 좌우를 살폈다고 감독관에게 항의했다. 그랬더니 눈을 좌우로 돌려서 확인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고개를 좌우로 돌려 확인을 해야 한다는 감독관의 대답이 돌아왔다. 면허 시험에서부터 이렇게 엄격하게 교육을 시킨다. 따라서 모든 사람들이 정지 신호를 철저하게 지키게 되는 것이다.


일견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더욱 효과적이며 안전을 담보하는 시스템이다. 신호등이 고장 났을 때 경찰관이 없는 상황을 상상하면 명확해진다. 우리는 서로 먼저 가겠다고 차 머리를 들이밀 것이다. 결국 간 큰 사람이 먼저 가게 된다. 사회에서 목소리 큰 사람이 이득을 보듯이 말이다.


반면에 미국에서는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한 대씩 사거리를 건너간다. 정지 신호 시스템은 이런 위기 상황에서 더욱 효과를 발휘한다. 이렇게 법규를 철저하게 지키면 개인과 전체가 혜택을 보는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는 것이다. 운전면허 시험 단계에서부터 철저한 교육을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보다 더 근저에는 대다수의 다른 사람이 규칙을 지키기 때문에 내가 규칙을 지키더라도 손해 보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많은 사람들의 규칙을 지키는 것에 대한 동조행동도 있을 것이다. 그 결과 모든 개개인이 철저하게 규칙을 지킨다. 국민성을 탓하지 말고 개인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는 시스템, 의식을 변화시킬 수 있는 교육에 힘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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