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 시절 임명된 공공 기관장 가운데 임기가 1년 이상 남은 자리가 전체의 69%(256곳)에 달해 ‘알박기 인사’ 폐해가 표면화할 조짐이다. 이들 중 상당수가 윤석열 정부의 국정 철학과 크게 달라 정책 집행 과정에서 파열음이 생길 수 있다. 특히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설계자인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장과 한미 연합 훈련 축소를 주장해온 홍현익 국립외교원장은 새 정부의 정책 노선과 대척점에 서 있다.
최근 도마 위에 오른 자리는 방송통신위원장과 국민권익위원장이다. 두 위원장은 장관급 예우를 받지만 독임제 부처 장관과 달리 임기가 끝날 때까지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 공동대표를 지낸 한상혁 방통위원장은 ‘정치 편향성’ 논란을 빚어왔다.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지낸 전현희 권익위원장은 취임 이후 추미애·박범계 전 법무부 장관 등을 편드는 판단을 내려 공정성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가 이들을 임기 전에 교체할 방법은 없다. 지난해 법원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에서 사표를 강요하는 것은 불법이라고 판결했기 때문이다. 핵심 공공 기관장의 선임 방식과 임기 등을 재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배경이다.
합의제 기구 수장의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독립성과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등은 정파성이 강한 ‘코드 인사’를 강행해 합의제 기구의 정신을 훼손했다. 합의제 기구의 본래 취지를 살리려면 다수 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추천위원회를 통해 독립성이 보장되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일부에서는 정치적 요소가 개입되는 여야 추천 합의제보다 아예 일반 부처와 같은 독임제 방식을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 대안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일반 공공 기관장 인사의 경우 미국처럼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공직자 리스트인 ‘플럼북’을 도입하자는 견해도 있다. 제도를 바꾸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전임 정권과 노선을 함께했던 방통위원장과 권익위원장 등은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순리이자 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