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은 ‘자유민주주의’ 규범을 수호하는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위상을 국제사회에 알리려는 의지로 풀이된다. 미국이 주도하는 중국·러시아 견제 대열에 동참함으로써 한미 동맹을 더욱 끈끈히 결속시키는 것은 물론 경색됐던 한일 관계도 개선의 물꼬가 트일 것이라는 기대감이 나온다.
10일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평가하며 “가치와 규범을 토대로 하는 국제질서 유지” “글로벌 중추 국가로서 우리나라의 역할을 확대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윤 대통령이 국제 외교 데뷔 무대로 단일국가가 아니라 수십 개국이 참여하는 다자 회의를 선택하면서 “개방적·포용적 질서 구축에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한국의 세계시민으로서의 역할과 위치를 줄곧 강조해왔다. 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자유와 인권의 가치에 기반한 보편적 국제 규범을 적극 지지하고 수호하는 데 글로벌 리더 국가로서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며 “우리나라는 국내 문제와 국제 문제를 분리할 수 없다. 국제사회가 우리에게 기대하는 역할을 주도적으로 수행할 때 국내 문제도 올바른 해결 방향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세계 질서 재편을 둘러싼 갈등 속에 미국이 주도하는 ‘가치 동맹’에 동참하겠다는 의사를 이번 나토행으로 강력하게 표현한 것이다.
나토는 1949년 4월 구소련이 서방으로 팽창하는 것을 막기 위한 지역 집단 안보 체제로 발족됐다. 하지만 이제는 단순한 군사동맹을 넘어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의 ‘규범 동맹’으로 평가 받는다.
나토가 아시아태평양 지역 4개국(한국·일본·호주·뉴질랜드)에 초대장을 보낸 이유도 권위주의 국가인 중국의 위협 대응 방안을 담은 새로운 ‘전략 개념’을 채택하기 위해서라는 분석이다. 나아가 ‘한미 동맹 재건’을 선언한 윤석열 정부가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다자 안보 네트워크에 참여함으로써 한미 동맹의 질적 향상까지 이룰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유엔이 무력화됐다”며 “이제 미국 주도의 안보 블록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더 이상 중·러 위협에 맞서 유엔의 선의만을 믿을 수는 없게 됐다”고 말했다. 남 교수는 “윤 대통령이 공식적인 국제 외교 데뷔 무대에서 미국이 가는 곳에 한국도 있다는 걸 보여주게 됐다”며 “한국과 일본이 초청됐으니 이번 나토 모임의 구도 자체가 자연스럽게 ‘나토 플러스 한미일’이 됐다”고 설명했다.
한일 관계 개선에도 속도감이 붙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일 정상회담은 2019년 12월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중국 청두에서 열린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양자 회담을 한 것이 마지막이다. 상황에 따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까지 포함한 한미일 정상회담이 추진될 수도 있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에 대응하는 3국 공조가 더욱 긴밀해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한일 간에는 일제강점기 강제징용의 배상 판결, 일본군 위안부 등 예민한 과거사 문제가 얽혀 있기 때문에 섣부르게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신중론도 나온다.
이면우 세종연구소 부소장은 “일본과 신뢰를 다시 쌓으며 지난 10년 넘게 작동되지 않고 있는 셔틀외교를 복원하는 등 이번 만남을 한일 관계 개선을 위한 중장기적 전략 수립의 첫 단추로 활용해야 한다”며 “첫 만남에 많은 기대를 하다가는 오히려 한일 관계가 더 복잡해질 수 있다”고 조언했다. 대통령실도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한 듯 ‘한일정상회담과 관련해 이야기되고 있는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예민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희가 확인해드릴 수 있는 상황은 아직 없다”고 말을 아꼈다.
다만 나토 회의 참석으로 예상되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을 어떻게 풀어나갈지는 윤석열 정부의 외교 과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중국은 우리나라의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참여 선언에 강력히 반발하고 나선 상태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 대통령의 대중국 외교 기조는 상호 존중과 당당한 외교”라며 “중국과 러시아 측이 반발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차분히 설득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