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도 경제사회노동위원회(경사노위)를 통해 노동 개혁 과제를 풀어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노동학계 인사의 말이다. 노사정 사회적 대화 기구이자 대통령 자문 기구인 경사노위는 문재인 정부에서 노사 간 첨예한 대립을 대화로 풀고 정부 정책 단계로 이행하는 역할을 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 주 52시간 근무제 보완을 위한 탄력적 근로시간제, 과로사 방지 대책, 전 국민 고용보험 추진 등 다양한 노동 과제는 경사노위에서 노사정 합의가 이뤄졌다. 이세종 경사노위 협력홍보팀장은 “개혁 과제 추진을 위해 노사가 균형감을 갖고 대화할 수 있도록 의제 발굴 등 준비 작업에 적극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노사정 합의 기구인 경사노위가 보이지 않는다. 고용노동 정책 주무 부처인 고용노동부는 노사 사이에서 중심을 못 잡고 갈지자 행보다. 경사노위와 고용부가 상호 보완적으로 움직이며 노사 관계는 물론 노동 유연화 등 굵직한 노동 개혁 과제를 풀어낼 수 있을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10일 노동계에 따르면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의 거취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문재인 정부 첫 해인 2017년 위원장으로 위촉된 문 위원장은 재연임에 성공해 2023년 9월까지 임기를 보장 받았다. 하지만 위원장은 대통령이 위촉하는 자리다. 새 정부 출범에 맞춰 위원장도 바뀌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많았던 배경이다.
노동계에서 경사노위 위원장 교체설이 가라앉지 않는 가운데 경사노위가 논의 중인 현안들은 공회전하고 있다. 타임오프제 심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노동조합이 회사에서 월급을 받는 유급 전임자를 얼마나 둘 수 있는지에 관한 기준을 정하는 타임오프제 심의는 법정 심의·의결 기한을 4개월이나 넘겼다.
노동학계에서는 윤석열 정부에서도 경사노위의 역할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많다. 노사 간 이해관계가 얽힌 정책은 경사노위가 만든 노사 합의 위에 고용부의 정책이 수립되는 방식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특히 윤석열 정부는 노동시간 유연화,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법) 개정 등 노사 간 충돌이 예상되는 노동정책을 예고하고 있다. 노동정책은 사회적 공감대 없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일 경우 노동계의 반발이 클 수밖에 없다.
노동계에서는 고용부 행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계 출신인 이정식 장관은 노동 현안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정부 출범 한 달이 지났는데도 뚜렷한 존재감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고용부가 노사 현안에 대한 대응이 한 박자 늦거나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상황도 반복되고 있다. 고용부는 지난달 26일 대법원의 임금피크제 판결 당일에는 보도자료 등을 통해 공식 입장을 내지 않았다. 하지만 노사가 판결 해석을 두고 혼란을 겪자 이달 3일 뒤늦게 장관이 직접 나서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달 기자들과 만나 중대재해법에 대해 “방법론이 적절한지 들여다봐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 장관은 이달 2일 기업 간담회에서 “중대재해법 개정 요청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사망 사고가 가시적으로 감소해야 한다”며 결이 다른 입장을 밝혔다.
화물연대 총파업에 대한 대응도 도마에 올랐다. 화물연대 총파업은 윤석열 정부의 첫 노정 시험대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중차대한 사안이다. 하지만 이 장관은 총파업 직전 ILO 총회 참석차 출국했다. 총파업 나흘째인 10일 노동 동향 점검 회의를 개최하고 “범정부적 대응을 뒷받침하겠다”며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