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급등에 美 '카슈끄지 피살 사건' 덮나

'러 제재·인플레 완화에 필수'
사우디에 관계복원 의사 전달
바이든 방문 여부는 아직 미정
美 셰브런 사업재개 논의 허가
베네수엘라에도 러브콜 보내

AP연합뉴스

미국 정부가 워싱턴포스트(WP)의 칼럼니스트인 자말 카슈끄지 피살 사건을 덮고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관계를 회복하기로 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유가가 급등하고 인플레이션이 악화되는 상태에서 코너에 몰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사우디에 먼저 손을 내민 것으로 풀이된다. 바이든 행정부가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그동안 관계가 소원했던 산유국들을 중심으로 외교 관계를 재검토하는 모양새다.


11일(현지 시간) CNN은 미국 고위 관료들이 미국이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설정(reset)’하며 사실상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서 넘어갈 준비가 돼 있다는 의사를 사우디 측에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한 관료는 CNN에 “양쪽 모두 중동의 평화와 안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이(카슈끄지 사건)를 넘어서야 한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 CNN은 “카슈끄지 살해를 이유로 사우디를 ‘왕따(pariah)’로 만들겠다고 공언한 바이든 대통령에게 있어 이번 재설정 계획은 극적인 전환”이라고 분석했다. 사우디 반체제 언론인인 카슈끄지는 2018년 터키 이스탄불의 사우디 총영사관을 방문했다가 살해됐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 사건의 배후로 사우디의 실세인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를 지목했고 이에 사우디는 바이든 대통령 취임 후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이어오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이 사우디와의 관계 개선에 나서는 것은 연일 급등하는 유가 때문이다. CNN은 “현재 미국의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 목표 중 하나는 러시아를 정치적으로 고립시키고 러시아산 석유 수출을 금지해 전쟁 자금을 차단하는 것”이라며 “미 관리들은 사우디가 미국 편에 서지 않는다면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세계 석유 시장을 안정시켜 인플레이션을 완화하기 위해서도 사우디의 협조는 필수적이다. 사우디는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 가운데 이란과 함께 증산 여력이 가장 큰 곳이다. 제니퍼 그랜홈 미 에너지부 장관은 앞서 “사우디가 카슈끄지에 한 일을 해명해야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우리가 세계 석유 공급을 늘려야 한다는 데도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사우디가 이끄는 OPEC이 (증산의) 선두에 있다”고 말했다. 바이든 행정부가 ‘범죄에 대한 정의’라는 명분에 앞서 미국 국익 측면에서 사우디와의 관계를 재설정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방문 여부에 대한 결정을 아직 내리지 않았다”면서도 “만약 사우디를 찾을 경우 에너지를 포함한 여타 지역 안보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질 것”이라며 방문 가능성을 열어뒀다. 가디언은 바이든 대통령이 이달 말 사우디와 유럽·이스라엘 순방을 계획하고 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미국 정부는 그동안 경제제재를 단행해온 베네수엘라에도 구애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앞서 로이터통신 등은 미 재무부가 그간 미 정부의 제재로 중단된 미국 정유 기업 셰브런과 베네수엘라 정부의 원유 사업 재개 논의를 허가했으며 이탈리아 정유 기업인 에니와 스페인 정유 기업인 렙솔이 베네수엘라산 원유를 유럽으로 운송하는 것도 허용했다고 전했다.


다만 미국의 이 같은 노력이 유가를 낮출 수 있을지는 불분명하다. 뉴스위크는 “사우디나 베네수엘라 어느 쪽도 러시아산 원유 감소에 대응해 가격을 낮출 수 있을 정도의 석유를 시장에 투입할 수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네수엘라의 계속되는 반미 행보도 문제다. 이날 베네수엘라는 미국의 경제제재 대상인 이란과 석유 등의 분야에서 20년간 협력하기로 합의했다. 로이터는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압력에 맞서는 베네수엘라를 이란이 계속 지지할 것임을 공언했다고 현지 관영 언론을 인용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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