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확장 억지는 신뢰할 만한가.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억지(抑止·deterrence)’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성(credibility)’이기 때문이다. 국제정치학에서 억지란 강력한 방어·보복 능력과 의지를 보여줌으로써 적성 세력이 위협이 될 수 있는 조치를 취하지 못하게 하는 정책 행위를 일컫는다. ‘억제(抑制)’라고도 하는데 감정이나 욕망을 억누를 때 사용하는 억제라는 단어보다 억눌러 못 하게 한다는 ‘억지’가 더 적절하다. 억지는 피아(彼我) 모두 능력과 의지에 대한 신뢰가 있을 때, 즉 억지가 성공할 것이라 믿고 받아들일 때 작동한다. 지금 한국과 북한은 미국의 확장 억지를 신뢰하고 있는가.
우선 ‘확장 억지’라는 용어부터 직관적이지 않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핵우산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적이 있다. 핵우산이란 개념은 상당히 직관적이다. 미국이 핵으로 우산을 쳐주고 그 안에 있으면 북의 도발을 막아낼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다. 미국의 전술 핵이 한국에 배치됐을 때는 더 그랬다. 당시만 하더라도 남북 모두 미국의 핵 억지 능력과 의지를 의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은 전술 핵을 철수했고 2000년대에 들어오면서 확장 억지가 핵우산을 대체하게 됐다. 시사에 밝은 필자의 친구들도 묻고는 한다. 확장 억지가 도대체 뭐야.
이번 한미정상회담 선언문에서도 명시됐듯이 미국의 확장 억지는 핵무기, 재래식무기, 미사일방어(MD) 시스템이 주요 수단이다. 핵무기를 콕 집어서 확장 억지에 사용하겠다고 회담 선언문에 못 박은 적은 이번이 처음이다. 문제는 미국이 언제 어떠한 핵무기를 사용할 것이냐는 점이다. 실제로 핵을 사용할 의지가 있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2013년 한미 정부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참여한 확장 억지 전략 대화에 참여한 적이 있다. 필자는 북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전술 핵 재배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 미국 측 관계자는 그러려면 미국의 핵전략을 통째로 다시 써야 하는데 그런 얘기는 꺼내지도 말라며 퉁명스럽게 받아쳤다. 그러고는 미국은 재래식무기나 MD 시스템만으로도 북한을 억지할 수 있다는 발언을 이어갔다. 그렇다면 확장 억지에서 미국 핵무기의 역할은 뭐냐고 필자는 반문했고 확장 억지의 핵심은 핵우산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돌아온 답에 필자는 아연실색했다. “솔직히 북한이 핵을 사용하더라도 미국이 핵으로 응징한다는 것은 비현실적이다. 핵우산이라는 말은 공식적으로 사용하지 말아달라.”
물론 이때는 “핵 없는 세상”을 주창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버락 오바마가 집권해 미국의 군사전략에서 핵의 역할을 축소하려 할 시기였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핵의 국제정치학의 원칙이 바뀌고 있다. 핵은 더 이상 실전에 사용할 수 없는 궁극의 방어 무기, 정치 무기가 아니다. 낙진이 적은 소형 핵탄두와 이를 투발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가 개발되면서 핵 사용의 문턱이 낮아졌다. 게다가 블라디미르 푸틴, 김정은과 같은 독재자들은 핵을 선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공공연히 위협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의 핵 정책도 공세적으로 바뀌고 있다. “핵 선제 불사용(NFU)”과 핵은 핵에 대응할 때만 사용하겠다는 “단일 목적” 원칙을 고려했던 조 바이든 행정부의 핵 정책도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기로 했다. 예전과 달리 미국도 보다 열린 자세로 한국과 “핵 억지” 협의를 하고 있다. 하지만 전술 핵 재반입이라든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 공유에 대해서는 여전히 난색을 표한다. 물론 그만한 이유가 있기는 하다. 전술 핵을 재반입하면 어디에 배치하고 방호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대선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는 확장 억지 강화를, 안철수 후보는 핵 공유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확장 억지의 틀 안에서 핵 공유 추진은 불가능한가. 북한이 도발할 때마다 미국의 전략 자산이 전개되고 한미 당국은 확장 억지 강화를 얘기한다. 그런데 확장 억지는 지금 북한의 핵 미사일 도발을 억지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인 10명 중 7명이 자체 핵무기 개발을 지지하고 있는 이유다. 이제는 정말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북한이 7차 핵실험 준비를 완료했다고 한다. 확장 억지는 북한의 핵 협박을 막을 수 있을까. 진실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