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수화물은 다이어트의 적으로 여겨진다. 특히 밥을 주식으로 하는 한국인은 탄수화물 섭취를 제한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쌀 소비량이 크게 줄었지만 빵, 과자와 같은 인스턴트 식품을 통한 밀가루 섭취가 늘면서 여전히 탄수화물 섭취 비중이 높은 편에 속한다.
그런데 이 같은 탄수화물 위주의 식습관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질환(NAFLD) 발병 위험을 높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서울대병원운영 서울특별시보라매병원은 김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최근 이 같은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13일 밝혔다.
비알코올 지방간 질환은 간에 과도한 지방이 쌓여 발생하는 질환이다. 과음으로 인해 간 내 지방 합성이 촉진되어 나타나는 알코올성 지방간과 달리,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과도한 열량 섭취가 주요 원인으로 지목된다. 발생 시 특별한 증상은 없지만 방치하면 간섬유화나 간경변증을 거쳐 심하면 간암으로까지 발전할 수 있어 조기 진단과 예방이 중요하다.
김 교수팀은 NAFLD로 진단된 환자 129명과 정상 대조군 75명 등 총 204명을 모집하고 ‘고탄수화물 섭취군’과 ‘저탄수화물 섭취군’으로 나눈 후 탄수화물 섭취량에 따라 NAFLD 발병 위험에 차이가 발생하는 지를 분석했다.
그룹별로 비알코올 지방간 발병과 관련이 있는 바이오마커의 체내 발현 수준을 비교하고, 대상자들로부터 채집한 대변 샘플을 기반으로 탄수화물 섭취 정도에 따른 장내 미생물 환경 차이도 함께 살펴봤다.
연구 결과, 탄수화물이 하루 섭취 칼로리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고탄수화물 섭취군은 그렇지 않은 저탄수화물 섭취군과 비교해 NAFLD 발병 위험이 유의하게 높았다. 탄수화물 섭취와 간수치(ALT·알라닌아미노전이효소)의 상관관계는 고탄수화물 섭취군에서만 양의 상관관계가 확인됐는데, 잠재적 혼란변수를 조정한 후에도 통계적 유의성이 유지됐다. 탄수화물 섭취와 인슐린 저항성을 의미하는 HOMA-IR 및 adipo-IR 수치 사이의 연관성 또한 고탄수화물 섭취군에서만 유의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에 따르면 NAFLD로 진단된 고탄수화물 섭취군은 조직학적 중증도가 상승함에 따라 염증의 원인이 되는 장내 세균 발현이 증가한 반면, 간섬유화 진행을 막는 데 도움이 되는 ‘베일로넬라시에(Veillonellaceae)’, ‘루미노코카세(Ruminococcaceae)’ 박테리아의 장내 풍부함은 상대적으로 감소했다.
또한 NAFLD 진단을 위한 예측 모델에 이러한 3가지 미생물군을 추가할 경우 정확성이 86.1%까지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체질량지수(BMI)와 연령, 성별만을 이용했을 때 정확성인 74.3%보다 12%P 가량 높은 수치다.
연구진은 고탄수화물 섭취가 장내 미생물 다양성에 부정적인 변화를 일으켜 NAFLD 발병 및 악화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판단했다.
이번 연구의 교신저자인 김원 교수는 “높은 비중의 탄수화물을 섭취할 경우 장내 미생물군 변화로 인해 간 대사기능 및 NAFLD 중증도가 악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며 “고탄수화물 섭취는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당뇨병 등 대사질환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탄수화물과 단백질, 지방 등 영양소 균형이 잡힌 식단을 꾸준히 유지하는 것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번 연구 결과는 마이크로바이옴(장내미생물) 분야에서 세계적 권위를 가진 SCIE급 국제학술지 ‘장 미생물 저널(Gut Microbes)’ 5월호에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