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사정이 나아질 걸로 기대했는데 이제는 희망도 없네요. 매출이 올라도 남는 게 없어 벌써 주변에만 가게 4곳이 문을 닫았습니다(서울 은평구 주점 사장 김 모 씨).”
글로벌 경기 침체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이 지속되자 폐업에 나서는 자영업자들이 급증하고 있다. 코로나19 직격탄 속에서도 근근이 버텨냈지만 물가 상승은 감당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게 공통된 목소리다. 여기에다 일주일 넘게 지속되고 있는 화물연대 파업으로 ‘주류 대란’까지 겹치면서 폐업 점포가 늘고 있다.
14일 서울경제가 만난 서울 시내 자영업자 대다수는 끝을 모르고 상승하는 물가가 가장 고통이라고 호소했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박 모(42) 씨는 “생선값도 문제지만 밀가루와 양배추 등 모든 재료의 가격이 동시에 올라 부담이 더 크다”며 “당분간 가격이 안정화될 것 같지도 않아 폐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자영업자들은 물가 상승을 반영해 이미 한두 차례 주요 메뉴와 제품의 가격을 인상했음에도 부담은 줄어들지 않았다고 입을 모았다. 가격을 올렸지만 치즈·감자·부추·배추 등 기본 식재료 가격이 껑충 뛰는 바람에 팔수록 손해를 보는 구조가 됐기 때문이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칼국수나 반죽에 쓰이는 ‘중력 다목적용 곰표 밀가루(1㎏)’의 지난해 대비 가격 상승률은 74.1%에 이른다.
서울에서 프랜차이즈 피자 가게를 운영하는 신 모(63) 씨도 “2.5㎏ 냉장 보관용 치즈 1봉을 2만 1500원에 납품받았는데 한 달 사이에 2만 6000원으로 올랐다”며 “한 번 오를 때 스타벅스 커피값만큼 오르는데 8월쯤 또 인상된다고 하니 답답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영업자들이 모이는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폐업을 선언하는 점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충북 청주시에서 치킨 가게를 운영한다는 A 씨는 “불과 이틀 전에 9900원에 납품받았던 재료가 1만 4000원이 됐다”며 “앞으로 식자재 가격이 더 오를 거라고 하니 더는 버틸 수 없어 폐업할 예정”이라고 했다.
4년 전에 분식집을 차렸다는 B 씨는 “물가가 치솟고 재료값이 너무 올라 남는 게 없으니 장사에 흥미를 못 느끼겠다”며 “가게를 양도하려고 하는데 요즘 치킨 가게가 워낙 매물이 많이 나와서 기다리는 중”이라고 말했다.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서울에서 폐업한 자영업은 5243개로 3.5%의 폐업률을 기록했다.
화물연대 파업의 장기화로 주류 재고가 줄어드는 것도 악재다. 이달 들어 6일까지 하이트진로의 평시 대비 제품 출고율은 38%로 집계됐다. 편의점 업계도 주류 제품에 대한 발주를 제한하는 등 대응에 나서고 있다. 송파구 방이동에서 치킨집을 운영하는 우 모(51) 씨는 “화물연대 파업이 장기화되면 매출에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다”며 “하루에 소주 세 상자가 팔리는데 지난주에는 한 상자도 받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화물연대 파업으로 피해를 보는 자영업자들이 늘자 소상공인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코로나19로 폐업 직전까지 몰렸던 소상공인들은 이제 겨우 터널을 지나 손님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화물연대의 파업은 소상공인의 처지를 깊이 헤아리지 않은 처사”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