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을 갖춘 나라입니다. 역량이 부족해서 우주 산업이 성장하지 못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근본적인 원인은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에 있다고 봅니다.”
최상혁 미국항공우주국(NASA) 랭글리연구소 수석연구원은 15일 서울 광장동 비스타워커힐서울에서 열린 ‘서울포럼 2022’ 라운드 테이블에 참석해 “한국 우주산업 발전을 위해 꼭 필요한 건 도전정신”이라며 이같이 강조했다. 최 수석연구원은 지난 1980년부터 40여년간 나사에서 우주·항공기술 기초연구를 담당하는 시설이자 가장 오래된 연구소인 랭글리에서 일했다. 2020년에는 한국인 최초로 나사 발명가 명예의 전당에도 이름을 올렸다.
최 수석연구원은 한국이 갖춘 전반적인 산업 역량에 비해 국내 우주 산업의 수준이 뒤처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15년 전 한국에 방문했을 당시 한국은 아직까지 자체 로켓 제조에 성공하지 못한 상황이었다”며 “다만 당시 기준으로도 한국 공업력은 세계 2차 대전 당시 로켓 제조에 성공했던 독일 공업력의 4배에 달했다는 점에서 한국이 처한 상황이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최 수석연구원은 지금도 상황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최 수석연구원은 “이제 한국은 세계 굴지의 공업 국가로 올라섰고, 공업력은 세계 2차대전 당시 독일의 20배 규모에 달한다”며 “그럼에도 미국, 일본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결국 ‘사람의 문제’가 아닌가 반문하게 됐다”고 말했다.
최 수석연구원이 말하는 사람의 문제는 다름 아닌 ‘도전정신 부족’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사회 분위기가 곧 도전정신 위축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다. 최 수석연구원은 “한국은 어릴 때부터 조금이라도 실패하면 안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 있어 우주 분야에 있어서도 ‘통 큰 도전’을 하지 못하고 자잘한 페이퍼 한 두 개 쓰는 데 만족하는 분위기”라며 “하지만 우주 관련 사업을 할 때 수지타산이 맞는지부터 계산하고 있으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며 고 힘주어 말했다. 우주 분야 특성상 당장 눈 앞에 보이는 성과는 낼 수 없더라도, 과감한 투자를 통해 미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 수석연구원은 나사의 사례를 들며 장기적인 안목의 투자가 중요함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최 수석연구원은 “나사의 경우 배정된 예산 중 25~30%은 우선 쓰지 않고 여분으로 남겨두는 게 일반적"이라며 “향후 10~20년을 책임질 ‘새로운 먹거리’ 발굴을 위해 대비 차원에서 남겨두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이날부터 이틀간 온·오프라인으로 열리는 서울포럼은 ‘대한민국 신성장전략:담대한 도전-우주에서 길을 찾다’를 주제로 연사들의 강연과 토론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