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반도체 인력 양성을 목숨 걸고 추진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반도체 인력 양성이 절실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적극적인 정책 추진을 위한 정부의 의지를 알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생산 시설을 자국에 확보하고 기술을 선도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이를 위해 반도체 분야에 대한 3700억 달러의 투자가 계획돼 있으며 29개 반도체 생산 공장이 전 세계적으로 건설될 계획이다. 기존 반도체 기업들의 급격한 투자 확대는 인력 수요도 함께 늘리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전통적 인터넷 기업인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알리바바·텐센트와 자동차 업체 포드·테슬라 등도 반도체 개발에 뛰어들어 인력난을 가중시키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와 대만·중국 등의 학령인구 감소는 인력 수요 대비 공급 차이를 더 확대시키고 있다.
미국 반도체 분야의 인력 현황을 살펴보면 2025년까지 7만~9만 명이 필요하며 공급망 확보를 위한 투자가 본격화할 경우 최대 30만 명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해 미국 반도체 분야의 인력 채용 공고가 78% 증가했으며 대표 기업인 인텔에서만 2500명의 인력을 채용하고 있다. 대만은 3만 4000여 명의 인력이 부족한데 이는 2년 전 대비 77% 늘어난 수준이다. 양대 반도체 회사인 TSMC와 미디어텍에서만 1만 명 이상을 채용할 예정이다. 일본도 반도체 인력 채용이 늘어 지난해 증가율이 10년 전 대비 10배 이상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거 반도체 사업 축소로 줄인 인력을 다시 충원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중국도 25만 명의 반도체 인력이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인력 부족 현상은 더욱 심각하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의 국내 인력은 약 6만 명으로 이는 메모리·파운드리 및 시스템LSI사업부를 포함한다. 파운드리사업부는 약 2만 명으로 경쟁사인 대만 TSMC의 6만 명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다. 시스템LSI사업부는 약 1만 명이지만 경쟁사인 미국 퀄컴은 4만 5000명이 근무한다.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2031년까지 3만 명의 인력이 부족하다. 전국 4년제 대학교 전자공학 분야에서 1년에 6500여 명이 배출되지만 이 중 공부 분량이 많은 반도체를 선택하는 학생이 많지 않아 부족한 인력을 채우기는 요원하다.
키워놓으면 뭐하나…해외로 떠나는 반도체 인재
더욱 심각한 문제는 외국으로의 인력 이탈이다. 최근 미국 반도체 인력 부족으로 국내 기업 직원들의 미국 이직이 늘고 있으며 국내 대학원생들도 졸업 후 바로 외국 기업에 취업하는 경우가 잦아졌다. 필자가 지도하는 연구실에서도 지난해 박사 학위를 받은 4명 중 1명은 이미 미국 기업에 취업했고 다른 1명도 미국 취업 허가를 받고 비자를 기다리고 있다. 또 국내 기업에서 근무하는 2명 중 1명은 전문인력 특기자 비자를 신청했다.
반도체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전 세계적으로 다양한 정책이 추진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매년 1억 달러의 교육비를 지원해 200여 개 대학이 공동으로 반도체 인력을 양성하는 미국반도체아카데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참여 대학들이 교과 과정을 함께 개발, 공유하고 시제품 제작 등의 실습은 거점 대학에서 역할을 분담하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매년 2000명을 추가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한편 개별 기업 차원에서도 인재 양성을 추진하고 있는데 인텔은 향후 10년간 반도체 교육과 연구에 대한 1억 달러 투자를 계획하고 있으며 IBM 또한 1억 달러를 반도체 교육에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대만 정부는 향후 10년간 3억 달러를 반도체 교육에 쏟아붓기로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반도체대학원 4개를 신설할 계획이다. 중국은 최고 명문대인 칭화대 등 12개 대학에서 반도체 단과대를 만들고 정부 지원을 받는다. 일본 정부도 올해 초부터 기업·정부·교육계가 협력해 반도체 인력 양성 프로그램을 전국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과정을 만들고 인력이 양성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부족한 인력을 빠르게 충원하려면 타 기업 혹은 타 국가의 인력을 흡수해야 한다. 이에 따라 세계 각국은 외국 인력 채용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의회는 외국 인력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입법을 추진 중이며 대만도 외국 인력 취업을 장려하는 정책을 2018년부터 적극 추진해 세금과 의료 혜택을 제공하고 영주권 보장을 위한 기간도 단축했다. 이를 바탕으로 2030년까지 10만 명의 전문가 영입을 목표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다양한 방안들이 추진되고 있다. 우선 석·박사급 인력 양성을 위해 대학원생 정원을 늘리는 방안이 많이 논의된다. 반도체 산업에서 필요한 고난도 기술 개발을 위해 고급 인재들을 양성하려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의 교육 현장에서 대학원 정원 확대가 인력 양성으로 바로 이어지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왜냐하면 반도체 분야 대학원에 지원하는 학생이 부족해 현재 대학원 입학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울대 공대 전기정보공학부의 경우 선발 학생이 입학 정원의 80% 수준이다. 다른 대학도 대학원 정원만큼 뽑지 못하는 상황은 비슷하다. 대학원 반도체 인력 양성을 제한하는 또 다른 요인은 반도체 분야의 교수 부족이다. 현재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서 반도체 전공 교수가 연구 지도하는 대학원생 수는 교수 1인당 평균 18.9명이다. 이는 다른 분야 대비 약 3배 수준으로 대학원생 추가 수용이 한계에 다다랐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효과적인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서는 학부의 반도체 학과 정원을 확대하고 반도체 분야 교수를 우선 충원한 뒤 대학원생을 증원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대로 가면 반도체 인력 대란 불가피…한국 지원금도 미국의 10% 그쳐
미국의 경우 학과별 정원 조정이 비교적 자유롭기 때문에 산업체 인력 수요가 늘면 이에 대응하는 분야의 정원 확대가 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수도권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을 늘리면 지방 대학의 신입생이 부족해지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특히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수도권 대학 증원을 제도적으로 제한하고 있다. 중국은 단과대를 설립해 칭화대 한 곳에서만 1000명을 양성한다고 하는데 우리는 학과 단위의 반도체 교육 과정 신설도 어려운 형편이라 제도 변경이 없다면 향후 심각한 인력난을 겪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나라 정부도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 중 지난해 시작한 차세대반도체디지털혁신공유대학 사업은 수도권 대학과 지방대가 협력해 교육하는 사업이다. 강원대·대구대·서울대·숭실대·조선이공대·중앙대·포항공대가 함께 교과과정을 만들어 공유하며 실험실습 교육은 서울대와 포항공대 중심으로 진행된다. 이 공동 교육과정은 지방대인 강원대·대구대 등에서 호응을 얻어 많은 학생들이 수강하고 있으며 반도체 학과는 지방대에서도 많은 학생을 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수도권 및 지방대의 반도체 정원을 함께 늘리고 공동 교육을 할 경우 반도체 인력 부족도 해결하고 지방대 활성화도 동시에 기대할 수 있게 된다. 이 사업은 미국반도체아카데미와 유사한 인력 양성 방법으로 우리나라에서 먼저 시작한 셈이다. 하지만 미국은 2000명의 인력을 양성하기 위해 1억 달러를 들여 200개 대학이 협력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는 10분의 1 수준인 100억여 원을 지원하고 참여 대학도 7개에 불과하다. 우리도 2000명 수준의 인력을 양성하려면 많은 대학이 참여할 수 있도록 예산을 대폭 늘리는 것이 필요하다.
이혁재 교수는…서울대 전자공학과에서 학사와 석사 학위를 취득한 후 미국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루이지애나공대 조교수, 인텔 선임연구원을 거쳐 2001년부터 서울대 전기공학부 교수로 재직해왔다. 현재 서울대에서 흩어져 있는 반도체 연구와 교육 관련 조직을 통폐합한 시스템반도체산업진흥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