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급실에서 환자 보호자가 휘두른 낫에 의사가 베이는 사건이 발생하자 가해자 엄벌과 재발방 대책 마련을 촉구하라는 의료계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한응급의학의사회는 17일 긴급성명서를 내고 “환자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 의사에게 돌아온 것은 감사의 표현이 아니라 살해 의도가 가득한 낫질이었다”며 “엽기적인 살인미수”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의료계에 따르면 지난 15일 오전 9시경 경기도 용인시 한 종합병원 응급실을 찾은 70대 남성 A씨는 응급의학과 전문의 B씨를 흉기로 찔러 다치게 했다. 앞서 지난 11일 심정지 상태로 이 병원에 이송된 70대 아내가 숨진 것과 관련, 병원 측 조처에 불만을 품고 당시 근무했던 B씨를 상대로 범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선물을 드릴 게 있다’며 병원 직원에게 응급의학과 전문의의 근무 시간을 묻고, 미리 낫을 준비해 사건 당일 해당 근무 시간에 찾아와 범행을 저질렀다는 점이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해당 의사는 목 바로 아래 10cm를 베였으나 즉시 응급 수술을 받아 다행히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A씨에게는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상태다.
응급의학의사회는 70대 남성인 가해자가 지난 15일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흉기를 휘두르기 며칠 전 이미 한 차례 난동을 부렸다는 점은 지적하며 “당시 난동을 제압하고 법적인 격리조치를 미리 취했다면 이런 불상사가 없었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응급의료법 개정으로 응급실 내 폭력 사건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지만, 오히려 경찰이나 검찰이 입건 자체를 꺼리는 현상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응급의학의사회는 “응급의료법이 개정되고 폭력 처벌 수위도 계속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진료현장에서 느끼는 안전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아무런 변화가 없다”며 “오히려 경찰이나 검찰이 응급의료법 위반으로 입건하는 자체를 꺼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이사회는 지난 16일 용인동부경찰서장에게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해 가해자를 엄벌에 처해 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상태다. 소청과의사회는 “우리나라 의료체계의 근간을 허물 수 있는 죄질이 나쁜 행위”라며 “단지 ‘치료 결과가 좋지 않다’는 자신의 판단과 감정으로 사적 보복을 하는 사회가 된다면 금수나 다름없는 짓이 합리화 되는 사회가 될 것”이라고 비난을 쏟아냈다.
대한의사협회도 이날 오후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임시회관에서 의사대상 흉기상해사건 관련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가해자에 대한 엄벌과 재발방지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기자회견에 앞서 이번 사건이 발생한 병원을 방문해 피해를 입은 응급실 의사의 건강 상태를 파악하고 위로를 전했다.
기자회견을 마친 뒤에는 관할서인 용인동부경찰서장과 면담을 갖고 엄정 수사를 촉구할 계획이다.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은 "이번 사건은 살인 의도가 명백한 중범죄"라며 "향후 무관용의 원칙에 입각해 가해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필요하다는 단호한 입장"이라고 강조했다.
의협은 조속한 시일 내 정치권과 긴밀하게 협의해 진료실·응급실에서 의료인 폭행을 방지하기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는 등 신속한 입법 추진에 나서겠다는 방침이다.
이 회장은 "의료기관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이 공익적인 영역인 만큼 의료인에 대한 안전과 보호를 보장하는 일 역시 공익 활동"이라며 "정부는 전적으로 의료진의 안전을 책임져야 한다"고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