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9시 무렵, 어두웠던 청와대 주변이 갑자기 환해졌다. 청와대 본관 앞 잔디마당인 대정원 쪽에서 뿜어나온 조명이 하늘을 향해 치솟았고, 함성이 터지고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수 비(40·본명 정지훈)가 청와대 74년 역사상 처음으로 청와내 경내에서 단독 콘서트를 진행했다. 이날 공연은 해외 OTT(유료 동영상 서비스 플랫폼) 넷플릭스의 예능 프로그램 촬영을 겸했다. 넷플릭스 제작물인 까닭에 공연 장면은 철저한 비공개였고, 관람객도 입장 시 휴대폰 렌즈에 스티커를 부착하는 등 촬영금지와 보안조치에 협조해야 했다. 다만 음악이 담장 너머 효자동과 팔판동 일대까지 울렸기에 비가 ‘레이니즘’으로 시작해 ‘태양을 피하는 법’ 등 자신의 대표곡을 공연했음은 인근 주민들도 알 수 있었다.
무대장치와 촬영장비 설치는 이날 오전부터 시작됐다. 오후 6시 무렵 청와대 정문 앞에는 입장하려는 관람객으로 긴 줄이 늘어졌다. 비 측에 따르면 관람신청자는 2만5000명 이상이었다. 정확한 수치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실제 관람객이 500명 안팎으로 파악돼 50대 1의 경쟁률로 추산된다. 관객들은 넷플릭스 방송에 대한 초상권사용 동의서에 서명한 후 입장했다. 오후 8시부터 주최측의 설명과 경품제공 이벤트 등이 진행됐고, 실제 공연은 9시부터 시작해 10시 무렵 끝났다. 비는 공연 중간에 “밤 공연이라 인근 주민들의 민원이 걱정돼 더 길게 할 수는 없다”거나 “잔디 훼손을 막기 위해 패드도 깔았다”는 등 청와대와 주변 지역을 고려하는 내용을 직접 말하기도 했다. 넷플릭스의 방영 일정은 미정이다.
앞서 비는 지난 2일 자신의 개인 인스타그램을 통해 청와대 본관에서 찍은 사진을 게시하며 “오는 17일 금요일 오후 7시 영광스럽게도 청와대에서 단독 공연을 한다”고 밝혔다. 비는 검정색 의상과 검정색 선글라스를 준비할 것을 당부하며, 무료 공연에 대한 관람 신청방법을 소개했다.
지난 달 10일 윤석열 대통령 취임과 함께 개방된 청와대에서 5월22일 가수 인순이, 거미 등이 참여한 KBS 음악프로그램 ‘열린 음악회’가 열린 적은 있지만 가수의 단독 공연은 처음이다. 청와대 개방 및 운영을 맡고 있는 문화재청에 따르면 비 측에서 윤 대통령 당선 직후인 지난 3월 ‘청와대이전TF’를 통해 공연 촬영을 신청했고, 무료 대관과 공연 허가를 받았다.
대정원은 대통령의 정상외교 관련 일정이나 외빈 행사가 열리던 공간이다. 청와대 일반 관람 때도 잔디 보호를 위해 들어갈 수 없도록 통제되는 구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