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경기도 광주에서 광주 지역농협의 한 직원이 긴급체포되는 일이 있었다. 그렇다. 이번에도 혐의는 횡령이다. 지역농협 직원 A씨는 지난 4월부터 타인 명의 계좌로 공금을 송금하는 방식으로 40억원 상당을 횡령한 혐의를 받고 체포됐다. A씨는 농협의 자체 조사과정에서 "스포츠 도박을 하던 중 빚이 생겼고 이를 갚기 위해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뭔가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가. 지난달 17일 아모레퍼시픽에서도 영업담당 직원 3명이 35억원의 회삿돈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들은 거래처에 상품을 공급하고 대금을 착복하거나 허위 견적서 또는 세금 계산서를 발행하는 식으로 돈을 가로챘다. 횡령 자금은 주식과 암호화폐, 도박 자금으로 활용됐다.
무려 115억원이란 돈을 횡령하며 지난 9일 서울 동부지법 재판부로부터 징역 10년을 선고받은 강동구청 직원 김씨 사건도 마찬가지다. 김씨는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2월까지 서울도시주택공사(SH)가 강동구청에 입금한 폐기물처리시설 설치 분담금 115억원을 전액 횡령했다. 이 돈은 주식투자와 개인 채무변제에 사용됐다. 김씨는 횡령한 금액 115억원 가운데 38억원을 돌려놨다. 그렇다면 나머지 돈은 어떻게 됐을까. 대부분은 주식 투자로 휴지 조각이 됐다.
계양전기 재무담당 직원 B씨는 좀 더 대범했다. B씨는 6년간 무려 245억원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 2월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 조사과정에서 B씨는 빼돌린 가운데 200억원을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와 주식 투자, 스포츠 도박 사이트에 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나는) 도박 중독이다”라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왜 횡령을 저질렀으며, 빼돌린돈으로 또 다른 투기에 나선 것일까. 만일 완전범죄에 성공했다면 그들은 평생 돈을 벌지 않고도 살 수 있었다. 몇 년 전부터 불어닥친 투자 광풍이 사람들을 횡령범으로 만들고 도박판에 밀어 넣은 것은 아닐까. 그들은 ‘어차피 내 돈이 아니니 몇 억원을 잃어도 아깝지 않다’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코인과 주식 가격이 곤두박질치자 ‘조금만 더 물을 타면 나는 수천억원대 부자가 될 수 있다. 조금만 더 돈을 넣어보자’라고 생각했을 공산이 크다. 하지만 모든 악인의 말로가 그렇듯이 그들은 인생의 상당기간을 철창 안에서 보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서점가를 점령한 투자 지침서, 온라인에 간혹 등장하는 수익 인증샷, 부자되기를 부추기는 유튜브 등 이 모든 것들이 종합돼 지금 당장 회사 돈이라도 훔쳐 투기를 하지 않으면 흙수저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조바심을 내게 만든 것은 아닐까.
지난 4월 투자의 귀재 워런 버핏은 3년 만에 대면 주주총회에 참석해 미국 금융시장이 단기 투자가 성행하는 거대한 카지노처럼 변했다며 "비트코인은 어떤 가치도 창출하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거대한 투기판은 미국이 아니라 바로 대한민국이 아닌가 싶다. 지난 몇 년간 대한민국 국민의 상당수가 주식·암호화폐 시세창을 보기 위해 스마트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고 남의 돈 수백억원을 훔친 뒤에도 코인, 도박판을 기웃거리는 범죄자들을 대거 양산했기 때문이다. 수사당국이 우리 주변에 고루 퍼져(?) 있을 횡령 범죄자들을 색출해 낼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