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암호화폐 등 투자자산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면서 은행의 주가연계신탁(ELT)에 자금이 몰리고 있다. 주식이나 암호화폐는 변동성이 커 투자를 주저하는 투자자들이 은행의 예·적금 이자에는 만족하지 못하면서 리스크 대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ELT에 관심을 키우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지난달 말 기준 ELT 잔액은 26조 9150억 원으로 전달보다 1조 2438억 원 늘었다. 지난해 말(21조 1696억 원)과 비교해서는 5조 7454억 원 급증했다. ELT 잔액은 올해 2월 전달 대비 1조 2999억 원 늘어 증가세를 본격화한 데 이어 이후 4개월 연속 1조 원대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권 전반에서도 ELT 판매는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4월 말 기준 국내 은행의 ELT 잔액은 30조 7032억 원으로 2020년 11월 이후 1년 7개월 만에 다시 30조 원 선을 회복했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증시 변동성이 심해지면서 고객들이 상대적으로 덜 위험한 상품을 선호하고 있다”며 “은행들도 ELT 판매에 집중하면서 잔액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LT는 증권사들이 발행한 주가연계증권(ELS)이나 주가연계파생결합사채(ELB)를 신탁 형태로 편입해 판매하는 상품이다. 이 때문에 수익 구조는 ELS와 동일하다. ELS는 만기일까지 기초자산 가격이 정해진 수준 아래로 떨어지지 않으면 원금과 보장된 이자(쿠폰)를 지급한다.
ELT가 인기를 끄는 것은 무엇보다 최근 주식시장이 급락하면서 신탁에 편입되는 ELS라는 상품이 주식에 비해 안정적이면서도 예·적금보다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근 발행되는 코스피200이나 다우존스산업지수 등 지수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ELS의 경우 연 6~10%가량의 쿠폰을 지급하고 있다. 대체로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지 않으면 약속된 이자를 주기 때문에 글로벌 증시가 급락한 최근 상황에서 자산 가격의 ‘급락’ 리스크가 덜해진 것도 영향을 끼쳤다.
또 투자 기간이 빠르면 6개월 정도라 오랫동안 자금이 한곳에 묶일 가능성이 적은 것도 장점으로 작용했다. ELS의 만기는 3년 정도지만 대개 6개월마다 중간 평가를 해 평가 당시 기초자산 가격이 일정 수준 이하로 하락하지 않으면 조기 상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 단기 투자 상품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금리는 상승하고 주식시장이 침체되면서 전반적인 시중 자금이 은행으로 몰리는 ‘역머니무브’가 활발한 것도 은행이 판매하는 ELT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실제로 증권사가 발행한 ELS 총액은 지난달 2조 4602억 원으로 전달보다 줄었지만 은행이 판매한 ELT는 오히려 늘었다. 상대적으로 은행이 안정적이라는 이미지가 투자자들의 관심을 ELT로 몰리게 했다는 설명이다.
다만 ELT의 성장세가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금융 당국이 파생결합펀드(DLF) 사태 이후 은행별로 ELT의 전체 규모(34조 원 이내)가 유지되도록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은행 관계자는 “은행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 한도에 가까워졌을 것”이라며 “총량 규제가 풀리지 않으면 투자자들이 관심이 많더라도 더 이상 판매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