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투자 늘린 국민연금·서학개미, 백조에서 미운오리새끼로 [조지원의 BOK리포트]

주가 내려도 美 나스닥 달려가는 개미
국내 좁아 해외 비중 늘리는 국민연금
거주자 해외투자 늘어나며 원화 약세
경상수지 흑자일 땐 대외건전성 개선
반대 상황에선 외환수급 불균형 요인

20일 서울 중구 을지로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현황판에 원·달러 환율이 표시돼 있다. 연합뉴스

원·달러 환율이 1300원에 육박하자 해외투자를 늘린 국민연금과 이른바 ‘서학개미’로 불리는 개인 투자자들이 원화 약세 배경으로 몰리고 있다. 경상수지가 흑자를 내고 원화 강세일 땐 해외투자 확대가 대외건전성을 개선하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하지만 반대로 경상수지 적자와 함께 원화 약세인 요즘 같은 시기에는 외환 수급을 악화시키는 부정적 요인이 된 것이다. 대외여건에 따라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정반대로 나타나면서 ‘백조’에서 ‘미운오리새끼’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20일 한국은행 ‘통화신용정책 보고서(2022년 6월)’에 따르면 거주자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꾸준히 늘어나면서 지난해 686억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해외주식 직접 투자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한은은 “코로나19 이후 글로벌 유동성 공급 확대, 언택트 문화 확산 등에 따른 미국 기술주 주가 급등 영향을 받았다”라며 “최근 미국 나스닥 등 기술주 주가가 조정세를 보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의 저가 매수세가 유입되면서 오히려 해외투자가 확대되는 모습”이라고 했다.


국민연금 역시 해외투자를 늘리고 있다. 국민연금의 해외주식 투자 규모는 2016년 86조 6000억 원에서 2020년 192조 7000억 원, 2021년 256조 6000억 원으로 큰 폭 늘었다. 해외투자 비중도 2018년 30.1%에서 2019년 34.9%, 2020년 36.5%, 2021년 43.8%로 코로나19 이후 대폭 확대됐다. 연금보험료 수입이 연금급여 지출을 웃돌면서 재정수지 흑자 규모가 꾸준히 확대되는 데다 운용자산 대비 협소한 국내 자본시장 규모 때문에 해외투자 비중을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 중이다.




한은은 미 연준의 통화정책 정상로 채권금리가 급등하고 미 달러화 강세로 대외투자 여건이 급변하고 있지만 국민연금과 개인을 중심으로 순투자 추세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연금은 인구구조상 재정수지 흑자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중기자산배분계획에 따른 해외투자 비중 상향 조정 등이 복합 작용하면서 향후 해외투자가 꾸준히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2020년 7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중기자산배분 계획에 따르면 국민연금의 해외투자 비중은 2019년 35% 수준에서 2025년 55% 수준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미 달러화 강세와 글로벌 주가 하락으로 당분간 위축될 가능성은 있지만 개인 해외투자 역시 흐름을 바꾸긴 어려워 보인다. 해외주식 위탁매매수수료율이 2019년 28bp(1bp=0.01%포인트)에서 2021년 16bp로 하락했고 해외주식 거래서비스를 제공하는 증권사도 늘었다. 해외주식 계좌 수도 2019년 말 30만 좌에서 2021년 6월 말 331만 좌로 10배 이상 늘었다. 해외투자 저변이 확대된 만큼 투자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뉴욕 증권거래소. 연합뉴스

경상수지가 대규모 흑자를 낸다면 이와 같은 해외증권 투자 확대는 긍정적 요인이다. 대외순자산 확대와 함께 이자·배당수입 등 투자소득으로 대외건전성을 개선시키는 것이다. 시장 위기가 발생했을 때 대외자산 일부가 회수되면서 국내 외화 자금 공급을 늘리면 외환부분의 안정성을 높일 수도 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위기 당시에도 일부 보험사가 30억 달러 규모의 미 국채 등 고유동성 자산을 매각해 외환시장에 공급한 바 있다.


문제는 최근과 같이 경상수지 흑자 폭이 축소되고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상황에서는 부정적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4월 경상수지는 8000만 달러 적자로 24개월 만에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경상수지 흑자 축소로 외화공급이 줄면서 외환 수급 악화와 함께 외채 증가 가능성이 제기된다. 가뜩이나 원·달러 환율이 오른 상태에서 추가적인 원화 약세 요인이 될 수도 있다.


미국 재무부도 원화 약세 배경 중 하나로 국민연금의 해외투자를 살펴보고 있다. 미 재무부가 발표한 올해 상반기 환율보고서는 원화 약세 요인을 분석하면서 국민연금의 해외자산이 2021년 2700억 달러에서 3300억 달러로 600억 달러 늘었다고 덧붙였다. 이는 평가가치 증가 영향이라고 덧붙였지만 사실상 해외투자가 환율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본 셈이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26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회의에서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 사진제공=한국은행

한은 금융통화위원회 내에서도 해외투자 확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지난달 금통위 의사록에 따르면 한 금통위원은 “해외 증권투자는 환헤지 과정에서 외화자금 수요를 유발하는데 경상수지 흑자폭 축소 등으로 외화 유동성이 줄어드는 상황에서는 대외차입을 통한 외채증가를 야기할 수 있다”라며 “거주자 해외증권투자와 이에 따른 외환 수급 상황을 면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금통위원은 “국민연금의 해외증권투자로 인해 유발되는 외환 유출 규모를 전망해 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 연준의 자이언트 스텝(0.75%포인트 인상)과 양적긴축(QT)으로 시장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는 만큼 해외투자는 리스크 요인이 될 수 있다. 원·달러 환율 역시 당분간 1200원대를 웃도는 높은 수준이 계속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한은 관계자는 “경상수지 흑자가 많고 원화가 절상될 때는 중앙은행이 달러를 매수해 시장에서 달러를 없애야 하는데 그럴 때는 해외 투자가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되므로 손 안 대고 코 푸는 격”이라며 “반대로 경상수지가 적자고 원화가 절하되는데도 해외투자가 계속되면 문제가 될 수 있어 ‘그때는 틀리고 지금은 맞다’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 ‘조지원의 BOK리포트’는 국내외 경제 흐름을 정확하게 포착할 수 있도록 한국은행을 중심으로 경제학계 전반의 소식을 전하는 연재입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