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금리 상승과 자산 시장 붕괴로 기업과 자영업자마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코로나19 이후 나온 각종 지원 대책이 끝나면 한계기업과 취약 자영업자의 잠재 부실이 터지면서 자칫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마저 나온다. 시장 충격 등으로 기업이 어려워질수록 이미 소비 위축이 뚜렷한 가계의 살림살이도 더 팍팍해질 수 있다.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 따르면 자영업자 대출 잔액은 올 3월 말 기준 960조 7000억 원으로 코로나19 직전인 2019년 말 대비 40.3% 급증했다. 한은이 정부의 손실보전금 지급과 함께 대출금리가 매년 0.50%포인트씩 오르고 9월 금융 지원이 종료되는 복합 충격 발생 상황을 가정한 결과 자영업 가구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은 올해 38.5%에서 내년 46.0%로 대폭 상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하위 30% 저소득 자영업자의 DSR은 48.1%까지 치솟으면서 취약차주의 비중이 높은 비은행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커졌다. DSR이 높다는 것은 소득 대비 갚아야 하는 원금·이자가 많다는 의미로 가처분소득이 줄어든다는 얘기다.
가계 소득의 원천 격인 기업의 부실도 심각하다. 이미 은행 등 금융권은 여신 관리에 깐깐해지고 있다. 이는 실적 악화 기업 등을 상대로 대출 회수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여기에 금융 지원 조치마저 종료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실적이 나빠진 중소기업 가운데 차입금 의존도가 높은 정책 수혜 기업이 직격탄을 맞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 한은은 코로나19 정책 효과로 드러나지 않았던 기업의 잠재 손실이 현실화하면 국내 은행 자기자본비율이 최대 1.4%포인트 하락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대외 여건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을 세차게 흔들고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으로 인한 국내외 정책금리 인상은 시장금리 상승을 통해 자산 가격 조정을 일으키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 장기화나 중국 등 신흥국 불안도 금융시장 변동성을 확대하는 요인이다.
무엇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충격이 투자자산의 상당 부분을 채권·주식 등 유가증권으로 보유한 증권·보험사부터 덮칠 것이라는 분석이다. 지난해 말 증권회사와 보험회사의 시가 평가 대상 채권 규모는 각각 244조 1000억 원, 336조 8000억 원으로 시장금리가 100~200bp 오르면 각각 1조 6000억~3조 3000억 원, 36조~72조 원의 평가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해 말 기준 증권사와 보험사의 주식 보유 규모는 각각 24조 5000억 원, 46조 원으로 주가가 20% 떨어졌을 때 각각 4조 9000억 원, 9조 2000억 원의 주식 평가손실이 생길 수 있다.
이에 금융위기 발생 가능성을 볼 수 있는 금융불안지수(FSI)는 3월(8.9)부터 이미 주의 단계(8)로 진입했다. 5월에는 13.0까지 상승하면서 2021년 1월(9.6) 이후 가장 높아졌다. 6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이후 시장 변동성이 크게 확대된 만큼 FSI가 위기 단계(22)로 진입할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중장기적인 금융 취약성을 보여주는 금융취약성지수(FVI)도 1분기 52.6으로 장기 평균(37.4)을 웃돌고 있다. 가계부채와 높은 집값이 금융 시스템의 잠재 위험 요소로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형 한은 부총재보는 “FOMC의 금리 인상 가속화에 따른 금융시장 변동성 증대로 금융 안정 상황이 악화된 것은 사실”이라며 “대외 리스크가 크게 증대되고 금융 안정 위험이 커지는 만큼 각 경제주체가 경각심을 갖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