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값 조정' 이틀 남았는데 협상 시작도 못해…우유대란 터지나

■낙농가 vs 유가공업체 '원유값 산정 개편' 극한 대치
'용도별 차등가격제' 놓고 입장차
낙농가 "협상 불참하면 납유 거부"
유가공 "논의에 진척 있어야 참여"
중재 해야 할 정부는 소극적 대응
시중 우유 400 ~ 500원 오를수도
"정부, 물가안정 첫 시험대 될 것"




원유(原乳) 가격 산정 체계를 두고 낙농가와 유가공 업계가 대립각을 세운 채 올해 원유 가격 협상을 시작조차 하지 않자 ‘우유 대란’이 벌어지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유통·식품 업계 안팎에서 커지고 있다. 유가공 업계는 우유 가격 현실화를 위해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낙농가가 이에 강하게 반발하자 원유 가격 결정 시한(24일)이 하루밖에 남지 않았는데도 아예 협상 참여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에 낙농가는 유업계를 대표하는 유가공협회가 24일까지 협상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장 ‘납유 중단’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양측이 ‘벼랑 끝 대치’를 이어가고 있지만 중재를 해야 할 정부는 소극적 대응만 하고 있다.





22일 낙농진흥회의 ‘원유생산 및 공급규정’에 따르면 낙농가와 유가공 업체는 통계청의 농축산물생산비조사 발표 이후 1개월 내에 원유기본가격조정협상위원회를 꾸리고 협상을 마쳐야 한다. 올해 통계청은 지난달 24일 농축산물생산비를 발표하고 지난해 우유 생산비를 전년 대비 4.2% 증가한 ℓ당 843원이라고 고지했다. 이에 따라 우유 생산자 단체인 한국낙농육우협회와 판매자 단체인 한국유가공협회는 통계청 수치를 바탕으로 24일까지 협상을 통해 원유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 원유 기본 가격 산출식에 따라 올해 1ℓ당 인상 폭은 47∼58원이다. 그러나 양측은 아직 단 한 차례도 협상 테이블에 앉지 않았다. 한국유가공협회가 위원회에 참여할 위원을 추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가공협회가 불참 의사를 고수하는 것은 낙농가의 반발로 정부가 지난해 발표한 용도별 차등가격제 논의에 진척이 없기 때문이다. 이 제도는 국민 1인당 우유 소비량이 줄어들고 있는 만큼 치즈 등을 만드는 가공유용 원유 가격을 내려 제조 업체들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흰 우유 등 음용류는 현재 ℓ당 1100원(인센티브 포함)으로 유지하되 가공유는 900원으로 내리고 정부가 일부 차액을 보조하는 방식이다.


반면 낙농가는 기존 생산비 연동 체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젖소를 키우는 데 필요한 사료 가격이 폭등하는 상황에서 가공유용 원유 가격마저 내리면 생산 기반이 무너지고 생존 위기에 내몰린다는 이유에서다. 사료값은 낙농가 생산비의 55% 정도를 차지한다. 한국유가공협회의 한 관계자는 “차등가격제에 대한 논의가 답보 상태이기 때문에 가격 협상에 응하기 어렵다”며 “진척이 있어야 참여할 여력이 있다”고 말했다.


낙농가들은 24일까지 협상에 참여하지 않으면 당장 납유 거부 등 강경 투쟁에 나선다는 입장이다. 한국낙농육우협회 관계자는 “민간이 아닌 정부가 직접 수급과 가격을 결정하겠다는 것은 낙농진흥법 개정 취지에 위배된다”며 “우유 납품 중단 등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2월 한국낙농우협회 등 관계자들이 '농정독재 철폐, 낙농기반 사수 낙농인 결의대회'를 열고 납유거부 불사 투쟁방침을 알리며 우유 반납식과 화형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는 양측 사이에서 곤혹스러워 하고 있다. 기본적으로는 새 정부는 전 정부에서 진행한 용도별 차등가격제를 계속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물가 안정을 도모하고 우유값을 끌어내리려면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다만 이 경우 낙농가의 반발로 원유 공급에 차질을 빚어 되레 우유값이 뛰어오를 소지가 있다. 낙농가가 주장하는 생산비 연동 체계에 손을 들어줘도 원유값 인상에 따라 우유값이 오를 수밖에 없다. 지난해 원유 가격이 ℓ당 21원 올랐을 때 서울우유는 곧바로 우유값을 평균 5.4%(200원) 인상한 바 있다. 올해 원유 가격이 47~58원 사이에 인상될 경우 시중에 판매되는 우유 가격이 400~500원까지 오를 수 있어 물가를 단속해야 하는 정부에 치명타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원유가 산정 체계 및 원유값 협상 중재가 물가 안정을 목표로 하는 현 정부의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용도별 차등가격제 도입을 전제로 낙농가와 유가공 업계가 타협점을 찾을 수 있도록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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