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이후 70여 년간 이어진 옛소련의 점령으로 반(反)러시아 정서가 높은 발트 국가들에서 러시아의 침공 위협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잇따르고 있다. 에스토니아 총리는 러시아 침공 시 자국이 “지도에서 지워질 것”이라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군대 병력 증강을 호소하고 나섰다. 러시아의 역외 영토에 제재를 가한 리투아니아는 “러시아의 보복에 대비할 것”이라며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22일(현지 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카야 칼리스 에스토니아 총리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나토의 방위 계획상 발트 3국을 러시아가 침공할 경우 탈환까지 180일이 걸린다”며 “우크라이나와 발트 3국의 크기를 비교할 때 이는 우리 문화와 국가·국민이 완전히 파괴되고도 남을 시간”이라고 지적했다. 발트 3국인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라트비아를 합친 면적은 17만 5015㎢로 러시아가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약 100일간 점령한 면적(12만 5000㎢)보다 불과 5만㎢가 넓다. 이날 기자회견은 에스토니아 외무부가 전날 러시아 헬기의 자국 영공 침범 사실을 공개하며 “이웃 나라에 대한 위협을 중단하라”고 비판한 지 하루 만에 진행돼 눈길을 끌었다.
칼리스 총리의 호소는 이달 28일 열리는 나토 정상회담에서 발트 3국의 병력 증강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발트 3국에는 나토군이 각각 1000여 명씩 배치돼 있다. 칼리스 총리는 이 정도의 병력 규모가 “나토 회원국을 잃은 후에야 되찾겠다는 의미”라며 러시아의 초기 공격을 막아내려면 발트 3국 국가별로 2만~2만 5000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나토 관계자는 “동부 방위력 강화가 나토 정상회담 때 중요한 의제가 될 것”이라고 FT에 밝혔다.
한편 기타나스 나우세다 리투아니아 대통령은 이날 로이터통신에 “우리가 나토의 일원인 만큼 러시아가 군사적 충돌을 일으킬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면서도 “러시아의 전력 공급 중단 등 ‘비우호적 행동’에 대비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리투아니아는 자국을 거쳐 러시아 역외 영토인 칼리닌그라드로 가는 화물 운송을 제한해 러시아의 격한 반발을 초래했다.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발트 3국은 유럽 국가로부터 전력을 공급받을 수 있도록 지난해 전력망 확충 사업에 착수했으며 이를 위해 유럽연합(EU)에서 16억 유로를 지원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