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가 이틀 연속 연저점으로 주저앉으면서 개인투자자들이 최악의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 빚을 내 투자한 ‘빚투족’은 증권사에 담보로 맡긴 주식의 가격이 떨어지면서 담보 부족에 직면해 증시에 하방 압력을 가하고 있다. 청산되는 물량 자체도 수급에 부담일 뿐 아니라 담보 비율을 채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다른 주식을 파는 ‘악순환’까지 이어지며 증시 수급을 옥죄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 하락세가 멈추지 않으면서 역대급 반대매매가 이뤄질 수 있다는 공포가 가득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코스피 하단을 2000선까지 열어두며 비관론에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23일 개인들은 코스피시장에서 6722억 원, 코스닥시장에서 642억 원어치를 매도하는 등 총 7365억 원어치를 쏟아냈다. 2020년 3월 코로나19 사태 이후 증시가 급락하면 어김없이 저가 매수에 나섰던 개인이지만 이제는 다른 매매 행태를 보이고 있다. 그간 외국인의 매도 폭탄을 받아내며 힘겹게 증시를 떠받쳐온 개인투자자들이 투매에 나선 것은 신용융자 등 빚 내서 투자한 주식이 강제 청산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상장된 종목 2502개 가운데 52주 신저가를 경신한 종목 수는 1391개(55.6%)에 달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941개 중 519개(55.15%)가, 코스닥시장에서는 1561개 중 872개가 52주 신저가를 새로 썼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대장주 삼성전자(장중 5만 6800원)와 SK하이닉스(8만 9700원)를 비롯해 카카오(6만 6700원), 카카오페이(6만 4800원) 등이 신저가를 기록했다.
이날 코스닥시장의 하락세가 더 가팔랐던 것은 반대매매 주식 청산으로 인한 대규모 물량 출회 때문으로 풀이된다. 개인투자자 비중이 높은 코스닥의 특성상 개인 수급 충격이 더욱 두드러진 것이다.
증권가에서는 24일 ‘역대급’ 반대매매가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았다. 국내 A·B·C증권사 3곳의 전날 담보 부족 계좌 수는 1만 1829개로 집계됐다. 이는 이달 초의 1018개에 비해 11.62배 급증한 수치다. D증권사도 지난달 담보 부족 계좌 수가 1411건이었지만 이달 13일 7231건으로 폭증했으며 최근까지 증가했다. 4개 증권사만 해도 담보 부족 계좌가 최소 1만 9000개에 달하는 셈이다. 담보 부족에 시달리는 개인투자자들은 기한 내에 돈을 더 채워 넣으면 담보 부족을 면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면 반대매매 상황에 처하게 된다.
반대매매 액수도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증시 하락 압력을 더하고 있다. 이날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2일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 대비 실제 반대매매 규모는 228억 7527만 원으로 집계됐다. 이달 22일까지 일평균 반대매매 액수는 212억 349만 원으로 5월 일평균 반대매매 액수 164억 7825만 원보다 28.68% 증가했다. 고객이 증권사의 돈을 빌려 주식을 매입한 뒤 약정 기간 내에 변제하지 못할 경우 의사와 상관없이 주식을 일괄 매도하는 반대매매 액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증권사들의 차액결제거래(CFD) 반대매매 물량이 대거 나오면서 중소형주 주가에 더 큰 충격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강대석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최근 국내 증시의 낙폭이 두드러진 주원인으로는 CFD를 비롯한 반대매매 출현, 북한의 핵실험과 무력 도발 위험, 최근 개선되고 있는 중국 경제 상황과 한국 간 탈동조화(디커플링) 우려를 꼽을 수 있다”며 “무엇보다 내부 수급 요인의 영향이 가장 크다”고 진단했다.
국내 증시의 거래 대금이 줄어들며 시장의 활력이 떨어진 점도 한몫한다. 21일 유가증권시장의 거래 대금은 7조 4408억 원을 기록했다. 2020년 5월 7일(7조 3833억 원) 이후 2년 1개월 만에 최저치다. 최유준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최근 국내 증시가 하락 구간에서 글로벌 증시 대비 부진한 이유를 저점 매수 유인이 부족한 상황에 반대매매를 비롯한 매물 압력이 높아진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고환율도 외국인 매도세에 기름을 붓고 있다. 서울외환시장에서 달러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 종가보다 4원 50전 오른 1301원 80전에 거래를 마쳤다. 원·달러 환율이 1300원대에서 마감한 것은 2009년 7월 13일(1315원) 이후 12년 11개월여 만에 처음이다.
전문가들은 경기 침체 우려가 잔재한 가운데 개인 수급의 악순환이 더해지면서 코스피지수가 2000선까지 주저앉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유진투자증권은 “기업 이익 감소 폭이 10∼20% 정도라면 코스피는 2050∼2300대에서 하락을 멈출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올투자증권은 “성장주 위주로 구성된 코스닥의 경우 밸류에이션 부담으로 700선이 깨질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