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기술 유출 사건을 두고 대법원의 엇갈린 판결이 나와 주목받고 있다. 대기업과 연구소가 각각 보유한 기술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 지를 두고 비슷한 시기 재판부가 한 사건에 대해서는 유죄를, 다른 사건에서는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하급심부터 유무죄에 대한 해석이 뒤바뀐 이번 사건의 핵심 쟁점은 관련 기술정보가 외부에 알려졌는지를 판단하는 비공지성이었다. 법조계에선 결국, 영업비밀이 어느 정도의 경제적 가치를 지녔는가에 대한 판단이 유무죄를 가르는 기준이 됐다는 해석이다.
먼저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지난 9일 한국항공대학교 교수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국외누설 등), 업무상 배임 등 혐의에 대해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 국책 연구소 연구원이던 2017년 2월 연구소를 퇴직하면서 풍력발전기 블레이드 시험계획 관련 기술이 포함된 파일을 들고 나와 중국업체와 컨설팅 계약을 체결했다.
A씨는 해당 기술은 연구소에서 비밀로 지정된 바 없고, 보고서나 연구소의 홈페이지, 학술대회 발표 등을 통해 공개됐다고 주장했다. A씨의 주장대로 해당 기술이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산업기술이 아니라는데는 1, 2, 3심 모두 동일한 판단을 내놨다. 문제는 A씨의 기술유출이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인지 여부였다. 이에 대한 하급심 판단은 달랐다. 1심 재판부는 "연구소의 연구개발과제는 비밀로 보호해야 하는 보안과제와 널리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일반과제로 분류되는데, 해당 기술은 모두 일반과제에 해당한다"고 보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2심 재판부는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형식적인 분류 기준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해당 자료가 영업비밀의 요건인 비공지성, 경제성, 비밀관리성을 충족하는지 여부를 실질적으로 판단하는 것"이라며 A씨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A씨가 누설한 기술은 그 자체로 영업비밀의 요건인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을 모두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로부터 보호받는 산업기술이 아니더라도 연구소의 주요한 자산이라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반대로 지난 16일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는 부정경쟁방지법 위반(영업비밀 누설 등) 혐의를 받은 LG디스플레이 협력업체 대표 B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B씨는 2010년 3∼4차례에 걸쳐 삼성디스플레이 직원에게 LG의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기술인 ‘페이스실(Face Seal)’ 관련 자료를 넘긴 혐의다. 페이스실은 OLED 소자의 공기 접촉을 막아 디스플레이 수명을 늘리는 중요 기술 중 하나다.
이 사건 역시 B씨 넘긴 기술자료가 영업비밀에 해당하는지를 두고 하급심의 판단은 엇갈렸고, 결국 대법원은 최종 무죄를 선고했다. 대법원은 기술자료의 내용 대부분이 이미 논문 등을 통해 알려져 있거나 일본의 필름 제작 업체가 업계에 배포한 자료 등에 상당 부분 포함됐다고 봤다. 영업비밀 요건 중 비공지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다. B씨가 독자적으로 개발한 기술이 LG디스플레이와 공동 개발한 기술 정보와 혼재돼 있어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무죄 판단의 근거가 됐다.
부정경쟁방지법상 영업비밀은 '공공연히 알려지지 않고 독립된 경제적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서 비밀로 관리된 생산방법, 판매방법, 그 밖에 영업활동에 유용한 기술상 또는 경영상의 정보'를 말한다. 결과적으로 두 사건을 유무죄를 가르는 중요한 쟁점은 영업비밀 요건인 비공지성, 경제적 유용성, 비밀관리성 중 비공지성이다. 비공지성은 해당 기술이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는지 아닌 지를 따져 결정된다. 비공지성이 인정될 경우 경제적 가치를 판단하는 경제적 유용성과 기업이 해당 비밀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를 판단하는 비밀관리성을 추가로 판단해 형량을 결정한다.